장애인스토리텔링공모전 수상자 임혜연씨

입력 2015-09-30 16:04

“장애인 삶이 녹록지 않죠. 일기 쓰듯 감사 제목을 정리했던 부족한 글이 상을 받게 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이야기가 절망에 처한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 사무실에서 만난 임혜연(48·여)씨는 ‘2015 일상 속의 장애인 스토리텔링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답게 ‘장애인들 희망전도사’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씨 역시 생후 9개월 만에 소아마비를 앓고 평생 휠체어에서 살아온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현재 그는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교육재활사업을 통해 중증장애인 자립 생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장애가 만들어 준 장애인들의 연(緣)=임씨는 ‘우리 부부가 살아온 17년’이란 제목의 수필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는 언니네 집에 가는 길에 평소 안면만 있던 지금의 남편이 동행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언니네 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현관문 앞에서 30분 대화를 나눴고 6개월 뒤 두 사람은 부부로 연을 맺었다.

“같은 장애를 갖고 있었고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어요. 언니네 집 앞이 사랑의 오작교가 된 셈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청각 장애가 있던 그 언니는 그날따라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어요. 한참을 웃었답니다.”

그러나 달콤했던 신혼생활은 3년을 가지 못했다. 이름마저 생소한 악성 베체트 질환으로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발병하는 합병증 때문에 응급실에 가기 일쑤였다.

“오늘 살려 놓으면 내일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날들이었어요. 새벽기도회, 구역모임을 비롯해 교회든 집이든 응급실이든 장소를 불문하고 남편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도만이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희망의 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병간호와 집안 살림, 직장까지 다녀야 했던 임씨의 몸은 지쳐만 갔다. 게다가 남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우리 가정에 활력을 심어줄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남편에게 이야기했어요. 아기를 가져보자고요. ‘우리 형편에 아이까지 있으면 더 힘들다’며 반대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불임 치료까지 받으며 1년을 노력했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쏘다=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하루하루 절망 속에 빠져 지내던 부부에게 기어코 사달이 났다.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와 격한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병든 몸에 독약이나 다름없는 술이라니요.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혼할 각오로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아는 언니네 집에서 밤을 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지난 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고민을 언니와 나누던 중 몇 달 동안 생리가 멈췄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임신 테스트기를 구입해 확인해 봤어요. 임신이 맞더라고요. 결혼 9년 만에 얻은 아가, 아들 찬흠이가 우리 집안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줬습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요 계획입니다.”

남편은 새 가족이 생긴 후 병원을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들은 분명 근심과 걱정을 이길 수 있는 삶의 원천이었다. 임씨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하나님은 분명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함께 주고 계십니다. 제 삶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중증장애인 자립 생활에 대한 공부를 마치면 장애인들이 희망을 찾아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