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음악 세계화의 조력자,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아와드 에스베르 관장-

입력 2015-09-26 18:47
장지영 기자

프랑스 세계문화의집(La Maison des Cultures du Monde)은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예술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기관이다. 1982년 설립 이후 각국 전통예술이 유럽과 세계를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거점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판소리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 출발점이 된 곳도 이곳이다. 1982년 한애순 명창을 시작으로 판소리가 세계문화의집 극장(400석)에서 꾸준히 소개된 덕분에 2002년 파리가을축제에서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호평을 바탕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와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았으며 이듬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이어졌다. 판소리 외에도 산조, 가곡, 민요, 시나위 등 한국 전통음악은 물론 탈춤, 북춤 등 전통무용도 이곳에서 꾸준히 소개됐다.

기자 출신으로 유네스코 위원이기도 한 아와드 에스베르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관장은 24일(현지시간) “과거 프랑스 무형문화유산센터가 있긴 했지만 느슨한 협회 차원 기구였다. 문화부와 외교부, 파리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의해 세계문화의집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을 프랑스에 소개하고 교류하게 됐다”면서 “세계문화의집 설립 전에도 프랑스에 많은 극장이 있었지만 클래식을 제외한 전통음악을 소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세계문화의집에서 전통음악을 꾸준히 소개한 덕분에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파리가을축제에서 판소리와 종묘제례악이 공연됐지만 프랑스에서 판소리 등 한국 전통예술에 처음 관심을 둔 곳은 세계문화의집이었다”고 강조했다.

세계문화의집은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 전통예술 프로그램의 유치 및 협력을 위한 MOU’를 맺는 등 전세계 문화예술 기관들과 두터운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유네스코와 무형문화유산주간을 공동 주관하고, 각국 문화예술계 관련 종사자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 ‘이네디(INEDIT)’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세계 전통음악을 CD와 DVD 등으로 제작해 보존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한국 전통음악 음반도 이곳에서 10여장이 나왔다.

세계문화의집 설립자인 세리프 카즈나다르의 뒤를 이은 에스베르 관장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젊은 층은 전통 문화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대는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깊은 뿌리에 바탕을 두고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그 뿌리를 알고 찾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게다가 미학적으로도 전통은 현대와 이어진다”면서 “물론 프랑스 사람들이 판소리 한번 들었다고 한국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다양한 문화예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산조만 하더라도 유럽 사람들은 명상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문화예술이 똑같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나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다”며 세계문화의 집의 존재 의미를 강조했다.

세계문화의집은 특히 매년 봄 짧게는 한달 길게는 석달 동안 상상축제를 연다. 1997년 창설된 상상축제는 해외 문화예술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로 대부문 민속·전통예술 공연과 전시, 세미나 등이 이루어진다. 다만 올해는 한불상호교류의 해 등 여러 이유로 10월 9일부터 12월 20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엔 한국과 관련해 전통음악 명인들의 ‘산조&시나위’, 신무용의 후계자 양성옥의 ‘최승희 트리뷰트’. 김덕수가 이끄는 사물놀이 한울림의 ‘파리난장 2015’ 등이 포함됐다.

그는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국가다. 특히 현재 프랑스는 다인종국가이자 다문화사회이기 때문에 더더욱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세계문화의집이 평소 다양한 공연과 전시 등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상축제를 통해 좀더 집중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그리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관객을 찾기 위해 상상축제 기간에는 파리의 세계문화의집 이외에 다른 도시는 물론이고 극장 이외의 공간에서도 많이 열린다. 예를 들어 세계문화의집 자료원이 있는 브루타뉴 시는 물론이고 올해는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산조&시나위’, 태양극단에서 ‘파리난장 2015’ 등이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의미있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펼치는 세계문화의집은 비정규직인 연수생을 빼고 그를 포함해 정규직 7명이 운영하고 있다. 상상축제 공연 30회와 세계문화의집 자체 공연 70~80회나 되지만 연간 예산은 올해 기준으로 120만 유로(약 16억원)에 불과하다.

그는 “예산을 거의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공연 티켓 값이 매우 저렴하게 책정돼 있어서 기본 매출액이 매우 적은데다 음반 판매 등도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외부 기관의 문화 관련 사업의 공모에도 지원하고 있다”며 “프랑스에서 문화는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가 당연히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개인 기부가 적은 편이다. 세계문화의집도 항상 정부 지원 이외에 지원금을 찾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파리=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