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추석 열차표를 미처 예매하지 못한 이들을 노린 온라인 암표가 중고거래 사이트를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암표를 파는 이들은 계획한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고 꼭 필요한 이에게 차표를 양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선의의 양도로 보기에는 정가를 상회하는 웃돈에 거래되고 있다. 귀성길인 하행선 중심으로 활발히 거래되던 온라인 암표는 추석 전날인 26일을 기점으로 상행선 물량이 풀리기 시작했다.
국민일보는 암표 실태를 알기 위해 국내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KTX 열차표 판매글들을 분석, 지난 25일부터 판매인들에게 연락을 취해 봤다. 열차표 판매를 원하는 이들은 여타 일반적인 중고거래와 달리 정가를 제시하지 않고 일단 개인적인 연락을 취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사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하는 댓글이 달릴 때에는 “반환할 수 있지만 기왕이면 수수료를 물지 않고 간절히 원하는 이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식으로 반박했다.
A씨는 26일 서울에서 출발해 동대구에 도착하는 열차표를 여러 개 예매해 두고 있었다. A씨는 판매글에서 최대 4자리까지 연석(連席·연속된 자리)이 확보돼 있음을 강조했다. 문자메시지로 구매 의사를 밝혀 보니 “왕복으로 사겠느냐, 편도로만 사겠느냐”고 묻는다. A씨는 기왕이면 왕복 표를 1명의 구매자에게 일괄적으로 판매하기를 원했다.
가격을 문의하니 A씨는 정확한 구매의사를 먼저 밝히기를 요구했다. ‘4연석’을 한꺼번에 사야지, ‘낱장’ 또는 ‘2연석’으로는 판매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A씨는 KTX 일반객실 중앙부에 서로 마주하는 4개의 좌석, 즉 가족석을 일괄 구매한 상태였다. 표를 반환하려 해도 일부만 환불받을 수는 없는 상태였다고 A씨는 설명했다. 왜 그렇게 많은 열차표를 예매했느냐는 질문에는 일정이 가변적이었다고 대답했다. 4연석을 모두 사면 1장당 4~5만원에 넘기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에는 갑자기 다른 열차를 타게 됐다며 26일 서울발 동대구행 KTX 티켓을 내놓은 B씨를 접촉해 봤다. 하행선 가격을 문의했더니 B씨 역시 상행선과 하행선 모두를 한번에 사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B씨 역시 자신이 확보해둔 열차표가 연석이며, 정방향 좌석임을 강조했다. B씨는 입금을 확인하면 코레일이 제공하는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해 모바일 열차표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회원으로 가입돼 있지 않다면 자신이 가진 모바일 열차표의 ‘스샷’을 찍어 스마트폰으로 보내 주겠다고 했다. 여러 사람에게 중고 표를 팔아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는 이들을 안심시키려는 말투였다.
이들이 판매하는 암표의 웃돈은 열차시간이 다가올수록 높아졌지만, 완전히 임박했을 때에는 오히려 낮아지는 모습이었다. B씨는 지난 25일 저녁 다시 연락을 취해 왔다. 동대구행 하행선 2장만 10만원에 살 수 있겠느냐는 취지였다. 원래 4만원대인 가격을 생각하면 암표상들이 제시하던 액수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웃돈이었다. B씨는 상행선만 따로 구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짐짓 기회가 좋다고 어필했다.
표를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심리부터 이용하려는 이도 있었다. 서울발 부산행 KTX 티켓을 내놓은 C씨는 연락을 취하자 “아직도 표를 구하지 못했느냐” “암표상들의 물건도 이젠 거의 사라졌다”고 걱정했다. C씨는 자신이 판매를 원한다고 글을 올렸으면서도 “가격은 어느 정도 생각하시느냐”고 물어 왔다.
“가격은 내가 물어보려 했었다”고 하자 “편하게 먼저 말씀해 보시라”고 했다. 잘 모르겠다고 하자 C씨는 “암표값까지 하면 2배가 된다”고 말했다. C씨 역시 마련돼 있는 티켓이 연석임을 강조했다. C씨는 서울발 부산행 KTX 티켓 2장을 20만원에 팔고자 했다.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 C씨는 직거래를 해도 좋지만 모바일 발권 티켓을 사진으로 찍어 스마트폰에 전송하는 게 외려 간편하다고 말했다.
물론 판매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로 교환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드물게는 정가대로만 넘기겠다고 알렸고, 수요가 없으면 누군가가 구할 수 있도록 늦지 않게 반환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들도 있었다. 뒤늦게 열차표를 구하는 이들은 “비싸게 사겠다”며 표를 구한다고 먼저 글을 올렸다.
열차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이 가는 곳보다 더 멀리 가는 열차까지 수소문하고 있었다. 정차하는 곳만 확인되면 더 큰 웃돈을 들이는 셈이었다. 동대구까지 가야 하는 이가 안성맞춤인 표를 구하지 못하면, 더욱 큰 돈을 들여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 표를 구하는 식이었다. 정차역을 확인하지 않고 샀다가 피해액은 커지고 일정이 더욱 고약해진 사례도 있었다.
코레일은 승차권을 부정 판매하는 행위와 이를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자신이 구입한 가격을 초과한 금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은 당연히 처벌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승을 부리는 KTX 암표는 26일을 기점으로 귀경 물량이 많이 팔리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대개는 연휴 막바지인 28일, 29일에 경남·전남 지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열차 티켓들이었다.
코레일은 중고거래 사이트들에 이런 암표상들이 있는지 자정능력을 꾀해 달라고 협조한 상태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암표상이 올린 글을 캡쳐하고 공개적으로 신고, 활동정지 처리를 한 사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부는 국민일보가 취재한 대상들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귀성 암표 대해부…온라인 암표 중고거래 사이트서 기승
입력 2015-09-26 11:00 수정 2015-09-26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