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23일 발표한 인적 쇄신안이 초안보다 대폭 순화됐다며 불만섞인 아쉬움을 토로했다.
혁신위가 막판까지 격론을 벌인 쟁점은 인적 쇄신 대상의 실명을 공개할지 여부였다. 혁신위는 전날부터 이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했고, 결국 실명을 거론하지 않으면 속빈 강정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공개 쪽으로 결론냈다.
한 혁신위원은 24일 "초안은 핵폭탄급이었다"며 "내부에서 순화하고 조절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안이 마련됐다"고 전했다.
혁신위가 수위를 낮춘 데는 당 지도부의 강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 문재인 대표는 혁신위가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신임 정국 이후 당내 통합이 최우선 과제인데 혁신위 발표는 또다시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 대표는 하급심 유죄 판결로 공천 원천배제 대상이 된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강력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는 전언이다.
지난 22일 문 대표의 구기동 자택 최고위원 만찬에서도 당 지도부는 공천 원천배제 규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또 이튿날 혁신위 발표 전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은 공천안 처리를 위한 당무위 연기를 주장했다.
박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주승용 김영록 이윤석 의원도 아침부터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문 대표가 당무위 모두발언에서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도록 최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강조한 것도 박 전 원내대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혁신안 발표 후 당 지도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올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혁신위가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문 대표의 부산 출마를 촉구한 것은 전직 대표의 살신성인을 요구하려면 문 대표의 희생을 먼저 거론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게 혁신위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혁신위원 사이에서는 문 대표의 출마지로 현재 지역구인 사상구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인 영도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지만 구체적인 지역은 당과 본인이 결정할 사항이라다고 판단해 발표문에서 뺐다는 전언이다.
혁신위가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김한길 안철수 의원 등 2007년 이후 새정치연합을 이끈 전직 대표들에게 열세지역 출마 등 살신성인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다.
문희상 의원은 2007년 이후 당 대표를 맡은 적이 없었지만 비상대책위원장을 2번 맡고 그 기간도 다른 비대위원장에 비해 길었다고 판단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혁신위가 비노(비노무현)계를 겨냥했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문 대표와 함께 범친노로 분류되는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의원을 같이 넣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도 감안됐다는 후문이다.
거명된 전직 대표 측이 자신의 지역구야말로 열세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열세지역은 영남이나 강원, 충청 일부 지역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혁신위는 살인성인의 의미가 열세지역 출마 뿐만 아니라 총선 불출마까지 포함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혁신위원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CBS 라디오에 나와 "출마를 해서 역할을 하실 분이 계시고, 용퇴를 하실 분이 있다"고 말했지만 누가 용퇴 대상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경우 고향인 부산에 출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상당했지만 지역을 구체화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열세지역 출마론도 거론됐지만 결국 "당 대표와 지도부에게 국민을 감동시킬 자기희생을 요구한다"는 수준의 문구로 정리됐다고 한다. 당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이 원내대표의 서울 강남 출마를 요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하방론'을 요구하는 문제 역시 논의는 됐지만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이 과정에서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한다.
한 혁신위원은 "86까지 거론하면 전선이 너무 확대된다고 판단해 현 지도부와 전직 대표로 국한했다"며 "전·현 지도부의 희생이 86을 포함해 옆으로, 아래로 퍼져나가길 기대하는 뜻이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혁신위원은 "86그룹이 혁신안 실천에 앞장서 달라는 요구는 넣으나마다한 문구라고 생각해 넣지 않았다"고 전했다.
호남의 다선 의원을 대상으로 한 용퇴론이나 험지 출마론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초안의 100분의 1만 발표했다” 野 혁신위 “초안은 핵폭탄급” 무슨 내용이길래?
입력 2015-09-24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