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골목이 데려다줄거예요

입력 2015-09-24 15:39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글 길상효·그림 안병현/씨드북

골목은 도시의 외곽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사라져가는 주거문화가 됐다. 골목을 만들어내는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재개발에 밀려 부서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웃도 사라졌다.

그림책은 키 낮은 집들이 어깨동무하듯 다닥다닥 붙어 만들어내는 구불구불한 골목에 관한 이야기다. 좀 못살아도 그 좁은 길을 매일 오가며 이웃과 정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감 있는 연필 드로잉은 이 그림책을 함께 읽을 부모의 유년시절, 골목길 추억을 선명하게 불러낸다. ‘맞아. 그 땐 이랬어!’라고 연신 무릎을 치며 아이에게 그 때 이야기를 들려줄 듯 하다.

어슴푸레한 새벽, 리어카를 끌며 부지런히 걷는 청소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 집 앞을 쓸려고 나온 할아버지들의 인사소리로 골목의 하루는 시작된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평상 하나만 놓여 있으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슬쩍 보이는 어느 집 창으로 가수가 되고 싶은 중학생 누나의 노랫소리, 혹은 금슬 좋은 부부가 무슨 일인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새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골목이 있는 동네에서는 이웃집의 속사정까지 알 수 있다.

담벼락에 친 빨래줄, 볕 좋은 곳에 널어놓은 고추, 시멘트를 뚫고 핀 민들레….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인 골목이 있기에 가능했던 이 모든 에피소드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흑백의 드로잉으로 처리하면서 아이들의 옷, 슈퍼마켓 아줌마가 든 태극부채, 불 켜진 창 등은 포인트를 주듯 색을 입혀 따듯하면서도 생기가 넘친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