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 뒤늦게 글을 배운 할머니의 시 한 편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 네이버 뿜 게시판에 오른 사진이 24일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로 퍼졌다. 최근 시화전에 참석한 네티즌 A씨가 “감동적이라 공유한다”며 직접 찍어 올린 사진이다.
사진에 담긴 작품 제목은 ‘할미 꿈’이다. 서툰 글씨로 또박또박 적은 글이 눈길을 끈다.
‘아주 까막눈 때는 공부가 꿈이었는데/ 이제 좀 눈 뜨니 어미 없는 손자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사는 게 꿈이요/ 내 나이 칠십 다섯이니까 얼마나 더 살지 몰라도/ 어쩌든 저거들 앞가림할 때까지 잘 걷어 먹이고 다부지게 살 것이요/ 그것이 이 할미 꿈이요.’
글 아래에는 손자로 보이는 소년 둘 그림이 그려졌다. 그들 옆에는 한 가득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있다. 손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고픈 할머니의 마음으로 보인다.
담담하면서도 애틋한 내용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듯하다. “할머니 꼭 오래 사시라”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져 너무 뭉클하다” “눈물이 난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보고싶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어떤 시인에게 이렇게 애틋한 꿈이 있을까”라며 감탄했다. 어떤 이는 “밥 잘 챙겨 드시고 계시죠? 이번 추석에는 꼭 찾아뵐게요”라며 본인 할머니에게 보내고픈 메시지를 댓글에 적기도 했다.
해당 시화는 부산 성지문화원에서 한글공부를 한 김생엽(74) 할머니 작품이다. 작품 설명에는 “김 할머니는 평소 구수한 입담으로 웃음과 활력을 주는 분인데 일찍 세상을 뜬 며느리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지신다고 한다”는 소개가 적혔다.
24일 성지문화원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해당 시화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출품해 장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며 “시화전을 보신 어떤 분이 인터넷에 올려 많은 분들이 보신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개원한 성지문화원은 문맹자를 대상으로 문해(文解) 교육을 진행하는 비영리 단체다. 현재 70~80여명의 늦깎이 학생들이 이곳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관계자는 “김생엽 어머니는 3년 정도 (한글)공부를 하셨다”면서 “다른 어머님들의 시는 보통 공부 못한 한을 풀어 꿈을 이뤘다는 내용이었는데 김생엽 어머니 시는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게 담겨 많은 분들의 공감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그게 이 할미 꿈이요” 까막눈 뜬 일흔 할머니의 감동 시
입력 2015-09-26 00:07 수정 2015-09-26 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