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동차메이커 폭스바겐의 ‘속임수 배출가스’ 사태가 독일제품 전반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저명한 자동차전문가인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교의 페르디난드 두덴회퍼 교수는 23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독일산(Made in Germany)은 품질과 신뢰의 상징이다. 이제 그 신뢰가 무너졌다”고 탄식했다.
그는 “아무도 이번 사건의 규모를 상상치 못했으며, 독일 산업계에 미친 해악은 계속 확대될 것이다. 폭스바겐의 피해는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폭스바겐이 22일 자사 브랜드 디젤 차량 1100만대에 ‘눈속임’ 차단장치 소프트웨어가 설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파장이 미국 뿐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됐다. ‘문제’ 차량이 미국에서 리콜하겠다고 한 48만대에 국한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독일 정부의 대응도 긴박하다. 독일 교통부는 폭스바겐 디젤차량이 독일과 유럽의 법과 기준에 맞게 제조·검사됐는 지 여부를 판단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폭스바겐에 “모든 것을 완전히 투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기술의 존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사실상 방치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일간지 디벨트는 지난 7월 28일 독일 녹색당이 배출가스 차단장치의 문제점 등에 대해 독일 교통부에 질의해 받은 답변서엔 이런 사실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가 유럽에서 특히 인기 높은 디젤 차량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친화적 디젤 엔진’이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여러 전문가들을 인용, 이번 폭스바겐 사태가 디젤 차량에 대한 규제강화와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맥스 워버튼 자동차 전문 애널리스트는 “유럽 내 디젤차 점유율을 줄이고 미국에서는 확산중단의 속도를 높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규제당국이 디젤 차량 허용에 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라며 “더 강화된 차량 테스트를 통해 디젤 차량이 기준을 맞추기 어렵게 되거나 비용이 더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독일, 한국에 이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정부도 조사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유럽연합(EU) 차원의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 폭스바겐이 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으로 연간 약 100만t의 오염물질을 공기 중으로 내뿜었을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2일 폭스바겐이 밝힌 대로 조작된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1100만대의 디젤 차량에 장착됐다면 연간 최고 94만8691t의 질소산화물(NOx)이 공기 중에 배출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영국에서 1년간 배출되는 질소산화물 전부를 합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폭스바겐 사태, 메이드 인 독일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입력 2015-09-23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