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청년희망펀드...전시행정? 기부문화 정착 계기?

입력 2015-09-23 17:20 수정 2015-09-23 17:21

우리나라의 척박한 기부문화에 모처럼 색다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사회 지도층이 경제·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에 나선 ‘청년희망펀드’가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이 펀드는 ‘전시행정’의 냄새가 짙게 풍기지만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기부 문화에 새 획을 그을 만 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제 빈곤 퇴치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빌앤멀린다 게이츠’ 재단처럼 한국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내세운 기부 문화가 정착할 수 있을까.

청년희망펀드를 둘러싼 가장 큰 불확실성은 사업 목적에 있다. 정부는 펀드 출범 초기 ‘창조 경제 센터와 연계한 청년 일자리 확보’ 등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는 앞선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청년희망펀드는 일자리 확보 정책이 아니다”라며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에서 시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법무부의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인가서’에는 또 사업 목적을 ‘청년 일자리 창출 지원’과 ‘청년 취업기회 확대,구직애로 원인해소 등을 위해 설립될 청년 희망재단의 사업 지원’이라고 명기했다.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태도는 뚜렷한 사업 운영 계획 없이 일단 출범부터 시킨 ‘졸속 행정’임을 드러낸 것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23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 방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을 구상중인 상태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인정했다.

이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 기부로 출범했다가 설립 취소 위기에 몰린 청계재단의 길을 따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청년희망펀드는 청계재단과는 달리 공익신탁 형식으로 운영돼 다소 안전장치가 확보돼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이 제도는 공익재단과 달리 재산권을 재단이 아닌 수탁자(기부금 관리자)가 갖는다. 청년희망펀드의 수탁자는 5개 은행이어서 불법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신탁 재산을 아예 은행 재산과 별개로 관리해 ‘딴 주머니’를 차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부는 펀드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 기부는 거부하고 철저히 지도층 개인의 기부를 통해 사회적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실제 ‘2014 국내 나눔실태 조사’에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의 모범적 기부 증대가 필요하다’는 답이 54.6%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된 펀드가 범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과 연계시키면서 정치적 논란도 자초했다. 모처럼 출범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펀드는 사회에 안착할까, 아니면 현 정부와 함께 2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까. 관건은 확실한 비전과 지속가능한 사업 정책이지만 일단 출발은 ‘삐끗’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