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세탁소' 벗어나려는 스위스...여전히 불법자금 몰려 골머리

입력 2015-09-21 17:12
스위스가 전 세계 불법자금의 금고지기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계속 몰려드는 불법자산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스위스 관영매체 스위스인포는 지난 7월 발생한 말레이시아 나지브 라자크 총리가 얽힌 말레이 국영투자기업 1MDB 비리 사건에 수백억원대 불법자금이 보관된 스위스 은행 계좌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뒤 스위스 국회가 관련법을 개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위스에서는 이미 1998년 개정된 법에 따라 해외 유명 정치인과 연관된 자산은 출처를 공개토록 돼 있다. 또 지난 5월 유럽연합(EU)과의 협의를 통해 2018년부터 기존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들은 1986년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스위스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이래 수십년간 이어진 ‘블랙머니 세탁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여전히 세계 정치·경제계 비리의 온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랍의 봄’ 당시 중동 정치인들의 10억 스위스프랑(약 1조2132억원)에 달하는 불법자금이 발견됐고, 브라질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 부패 사건, 우크라이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부패 사건 등 굵직한 비리 사건에 스위스 은행들이 관여됐었다.

지난 6월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표한 ‘글로벌 자산 보고서 2015’에서 전 세계 외국인 계좌 중 스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조3000억 스위스프랑(약 2791조2570억원)으로 25%에 달해 세계 1위였다. 2위인 홍콩·싱가포르의 16%보다 월등히 높다. 전부 다 불법자금은 아니겠지만 ‘검은돈’이 포함됐을 개연성도 그만큼 높은 것이다.

이런 자금을 차단하고 싶어도 기존 법으로는 단속이 힘들다. 민간 은행이 독자적으로 불법 여부를 판단해 당국에 보고하도록 돼 있어서다. 민간 은행들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도 처벌 수위도 약하다. 때문에 현행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지만 전망은 비관적이다. 일부 스위스 정치인들이 구호로만 불법자금 퇴치를 외칠 뿐 실질적으로는 처벌안 마련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