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에는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한국 문화의 뿌리를 보여주고 조상을 기리는 공연으로서 프랑스 관객에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름’을 보여줬습니다.”
종묘제례악 공연이 열린 파리 국립샤이오극장은 디디에 데샹(61·사진) 극장장은 18일(현지시간) 한국 취재진과 만나 전통 보존의 중요성과 극장 운영의 철학 등 폭넓은 얘기를 들려줬다. 샤이오극장은 종묘제례악을 2015-2016시즌 공식 개막작으로 삼은 것을 비롯해 ‘한불 상호교류의 해’인 이번 시즌 6개의 한국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종묘제례악을 제외한 5개 공연은 모두 무용으로 ‘코리아 포커스’라는 타이틀 아래 2016년 6월 8~24일 열린다.
한국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종묘제례악을 개막작으로 삼은 것이 ‘모험’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데샹 극장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프랑스는 과거부터 다른 문화의 유입에 익숙한 나라로 관객들 역시 다양한 예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면서 “경쟁과 속도에 지친 요즘 프랑스 관객들에게 종묘제례악은 느린 시간과 시적인 움직임을 통해 명상을 하게끔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한불 상호교류의 해에 프랑스 관객들이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샤오이극장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바로 한국 신무용의 개척자 최승희가 1938년 6월 이곳에서 공연을 가진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최승희가 출연한 프로그램에 두 번째라고 쓰여있는 걸로 봐서는 그 전에도 이곳에 온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많은 관객을 매료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언급했다.
종묘제례악은 18일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개막식과 함께 치러진 공연은 한국과 프랑스의 정관계 및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전석 초대였지만 샤이오극장의 2015-2016시즌의 공식개막작으로 치러진 19일 공연은 1250석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티켓 가격은 종묘제례악을 포함해 거의 모든 공연이 평균 21유로(약 2만8000원)로 8유로(약 1만원)부터 35유로(약 4만7000원)까지 다양하다. 연령(노인 및 청소년), 실업 여부, 단체, 시즌 패키지 등의 여부에 따라 할인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샤이오극장을 비롯해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공극장은 좋은 공연을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티켓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면서 “문화예술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나눌 수 있는 공동의 재산이지 상업적인 상품이 아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바탕은 바로 교육과 문화예술에 있다”고 설명했다.
샤이오극장은 프랑스의 5개 국립극장(TN) 가운데 하나로 원래는 연극 극장이었지만 2007년 프랑스 문화부가 무용 전문극장으로 지정했다. 연간 예산이 2000만유로(약 266억원)로 연간 40여개의 공연이 열린다. 무용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연극과 서커스 등도 간간히 공연되며 전부 자체 기획공연(공동제작과 구매)으로 대관공연은 하나도 없다. 아주 가끔 패션쇼가 열리지만 패션계에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이다. 우리나라에선 무용 공연이 대부분 1~2일 열리는데 비해 이곳에선 이번 시즌만 보더라도 조세 몽탈보, 카를린 칼송, 가브리엘 뒤파이, 트리샤 브라운 등 인기있는 안무가들의 작품은 1~2주는 기본으로 열린다..
그는 “연간 예산 가운데 정부 지원금이 70%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티켓 판매와 특별 이벤트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면서 “좋은 작품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수많은 공연을 보는 한편 또다른 전문가들의 자문도 얻는다”고 밝혔다.
최근 계속된 경제위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문화예술 예산이 삼각되는 추세다. 그는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의 예산은 오히려 약간 늘었지만 지자체에서 예산을 너무나 줄이고 있어서 우려스럽다”면서 “문화예술 부문이 위축되면 우리 사회의 계층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더 큰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디디에 데샹 프랑스 파리 국립샤이오 극장장 "종묘제례악엔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입력 2015-09-20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