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아이들의 천국' 스웨덴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5-09-18 18:10
가디언에 소개된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 소녀 아티파.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소녀(16)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지중해를 건너다 죽은 난민 아이 에일란 쿠르디의 영상을 보면서였다. 소녀는 “저는 스웨덴이 다른 나라보다 살기 좋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말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17일(현지시간) 스웨덴으로 건너온 난민 소녀 아티파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티파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스웨덴으로 홀로 건너온 수많은 청소년 중 한명이다.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 리비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홀로 스웨덴에 도착했다.

스웨덴은 유럽 국가 중에서 난민 청소년·아동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동행 없는 난민 아동’이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호칭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홀로 유럽으로 건너오는 아동 세 명중 한 명이 스웨덴으로 향한다. 제도적으로 18세 이하 청소년이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유럽에서 가장 수월한 데다, 난민 등록 신청 기간 동안에도 아동들에 대한 처우가 좋기로 소문나서다. 일단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난민으로 인정되면 나머지 가족도 영주권이 보장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난민 아이들이 꿈꾸는 곳, 스웨덴=스웨덴 이민청에 의하면 일자리와 머물 곳이 줄면서 성인 난민들은 유입이 줄고 있으나, 홀로 스웨덴으로 건너오는 난민 아동은 지난 5월부터 급증하는 추세다. 난민 아동은 지난달까지 올해 들어서만 9383명이 왔고, 연말까지는 지난해의 두 배인 1만2000명이 건너올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에 기록한 388명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다.

지난 7일 로이터통신은 매주 700명의 난민 아동이 부모 동행 없이 스웨덴에 도착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내년에도 비슷한 추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마고 발스트롬 스웨덴 외무장관은 최근 난민을 더 받지 않는다는 비판에 “스웨덴은 1939년 핀란드와 러시아가 ‘겨울전쟁’을 벌였을 당시 7만명의 아동이 건너왔던 것을 제외하면 이런 일을 겪은 경험이 없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의 종착지, 예테보리=통상 아이들은 스웨덴 남부의 말뫼항을 통해 입국한 뒤 해안을 따라가 북쪽에 있는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로 향한다. 매주 200명에서 400명의 아동이 도착하며, 이는 예테보리에 도착하는 난민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로이터통신은 아이들이 밀입국 업자들에 의해 트럭에 실려 오면서 뼈가 부러지거나 머리에 부상을 입는 경우도 흔하다고 전했다.

도착하는 아이들은 대개 14~16세다. 주로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소말리아, 시리아, 에리트레아 출신이다. 이중 여자아이는 15%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보트나 버스를 타고 들어온다. 기차 아래 매달려오거나 숲에서 잠을 자며 걸어오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은 며칠씩 굶은 경우가 대다수다. 아기들이 공항에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가짜 아이들’의 등장=아이들이 급증하면서 스웨덴 정부는 사용하지 않는 학교 건물이나 교회 강당을 긴급개방하기에 이르렀다. 뮌달 지역에서만 지난해 이들을 지원하는 데 2억 크로나(약 282억9400만원)의 예산이 들었다. 이 돈은 대부분이 쉼터를 제공하는 데 쓰였다.

이런 가운데 충격적인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 7월 미국 게이트스톤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으로 들어오는 아동·청소년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성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 등록 시 18세 미만으로 등록하는 게 더 절차가 빠르고 허가받기도 쉽다는 이유에서다. 이 보고서는 최근 몇 년간 이런 ‘가짜 아이들’이 스웨덴으로 들어와 폭력, 마약사건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 신분으로 등록되었기에 이들은 독립된 곳이 아닌 스웨덴 현지의 일반 가정집이나 아동시설에 머물게 된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들에게는 1인당 하루에 5000크로나(약 71만8000원)가 든다. 어떤 경우에 스웨덴 정부는 이들의 거처를 위해 한달에 7만 크로나(약 1005만원)를 방세로 지출한다. 보고서는 정부가 지출하는 방세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집주인들 탓에 이러한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꿈을 꿀 수 있는 곳=부작용이 적잖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스웨덴 정부는 당분간 난민 아동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유지할 방침이다. 정부의 지원 덕에 아이들은 정착한 뒤에도 어른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스웨덴 스톡홀름대가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청소년 신분으로 스웨덴에 도착했던 이들의 현 취업률은 스웨덴 평균 취업률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아레프 카라미(21) 역시 열여섯 무렵 스웨덴에 건너와 꿈을 키우고 있다. 5년 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에서도 머물렀었지만 당시에는 생계를 위해 하루 7시간씩 고무 닦는 일을 하는 등 달리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카라미는 스웨덴이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스웨덴으로 건너왔다. 그는 “공부를 정말 하고 싶어 오게 됐다”면서 “지금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데 나중에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