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처음 왔을 때는 학교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잘 곳도, 일자리도 구할 줄 알았죠.”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역 주변을 배회하는 이집트 난민 소년 하미드는 매주 고향에 있는 엄마한테 안부 전화를 건다. 하지만 엄마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거짓말을 한다. 사실대로 마약을 팔며 연명하고 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어서다.
하미드는 최근 마약을 팔다 붙잡혀 감옥에 다녀왔다. 근처 연못에서 몸을 씻고 버스에서 잠을 청한다. “막상 와보니 생각과 달랐어요. 여기 우리 같은 애들은 구걸을 하거나 마약을 팔거나 몸도 팔아요.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여기 안 왔겠죠.”
유니세프에 따르면 유럽에서 올해 상반기 난민 신청을 한 어린이는 10만6000명이다.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왔지만 혼자서 온 아이들도 적지 않다. 영국 BBC 방송은 17일(현지시간) 혼자 온 난민 어린이들이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시칠리아 섬 등 난민 아이들이 처음 밟는 유럽 땅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 남부 지역이 그렇다. BBC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정부들이 재정과 일손이 모자라자 사설 센터에 난민 아이들을 떠넘긴 채 방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시설에 통역사 등 전문 인력이나 위생시설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소홀한 관리감독에 불안해진 아이들은 결국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남부 지역과 함께 로마 테르미니역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소굴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은 마피아 조직 밑에서 마약팔이를 하거나 30~50유로(약 4만~7만원)에 몸을 팔기도 한다. 유럽에 오는데 들어간 5만~6만 유로(약 6600만~8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밀입국 업자에게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난민 어린이센터 자원봉사자는 “아이들이 절박하다는 점을 알고 (마피아들이) 돈을 미끼로 내건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난민들의 유럽행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15일 헝가리가 국경을 전면 차단한 데 이어 우회경로였던 크로아티아 역시 18일 국경을 폐쇄했다. 크로아티아는 애초 난민에 우호적이었으나 1만명 넘게 밀려오자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태도를 바꿨다. 슬로베니아 역시 이날 난민 150명을 태운 열차를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멈춰 세웠으며 이들을 크로아티아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동유럽 국가들이 난민 분산수용을 계속 거부하자 독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는 “난민 분산수용에 반대하는 나라들에 유럽연합(EU) 차원의 지원금을 끊겠다”고 경고했다. EU는 23일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분산수용안을 재논의키로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난민 위기 속 범죄에 노출된 어린이들...범죄 조직의 돈벌이 수단으로
입력 2015-09-18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