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2] 그리스 집시선교 18년 김수길 조숙희 선교사 부부

입력 2015-09-18 17:25

지난 주일.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그리스 북동부 올림푸스 산 아래 집시촌 카테리니교회에서도 오전 11시 주일 예배가 진행됐다. 성인 30여명, 주일학생 40여명이 참석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낮고 척박한 집시마을에 예배당이 들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집시의 삶. 그렇다 보니 그들은 그악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불어넣는 것은 바늘로 차돌을 꿰는 것과 같았다.

김수길·조숙희 선교사 부부가 카타리니 지역 집시 선교를 시작한 것은 2000년 무렵부터다. 당시 부부는 주 거점 선교 도시인 테살로니키 공항 근처 집시 마을에 ‘야생화교회’를 개척해 ‘죽으나 사나’ 집시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라는 말씀에 의지했다.

유럽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정부도 자국 내 60~70만명에 이르는 집시에 대해선 주민과의 분리 정책을 쓴다. 그들이 주민 속에 들어올 경우 도난 사기 폭력 살인 등이 빈번하므로 도시 외곽에 땅을 주고 집단 마을을 형성케 했다.

카테리니 집시촌은 말라버린 강 뚝 옆에 조성된 마을이다. 1960~70년대 청계천 일대 빈민촌과 다를 바 없다. 이곳엔 400여명의 집시들이 산다. 비만 오면 침수되기 때문에 마치 동남아의 수상가옥 형태로 집을 지었다. 공사판에서 널빤지와 합판 등을 훔쳐 얼기설기 지은 주택이다.

부부는 전도에 나섰다가 여러 차례 차돌 세례를 받았다. 멱살도 잡혔다. 물세례도 다반사였다. 또 드센 집시 아이들은 ‘작은 악마’들처럼 부부가 탄 차를 두드리고 발로 찼다. 지금 카테리니교회 장로가 된 에반겔리와 야니도 그런 아이들이었다.

부부는 그럼에도 야생화교회 예배가 끝나면 60km 이상 떨어진 이곳으로 달려와 주일 예배를 인도했다. 2남2녀도 그런 부모를 따라 다니며 집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갔다. 모멸과 박해를 이겨내고 판자촌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3년여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한 해, 부부의 파송노회인 합동 측 부산노회를 중심으로 의료선교단체 부산누가회 사역팀이 이곳을 찾았다. 김 선교사가 집시촌장에게 허락을 겨우 받아 선교팀이 진료를 볼 공간을 하나 얻었다. 쥐똥 가득한 창고였다.

그때 치과팀이 마을 실력자의 부인의 발치 치료를 했다. 의료진은 절대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신신 당부했다. 그 부인은 습관대로 술을 마셨다. 염증이 생겼다. 며칠 후 김 선교사는 마을에 갔을 때 집시들에게 멱살을 잡힌 채 폭행을 당했다. 돌팔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부인은 지금 예배에 출석한다.

“‘죽으나 사나’ 심정으로 폭행을 당하고도 계속 찾아갔죠. 그런데 이번에는 사냥개가 저를 덮치는 겁니다. 그들이 물으라고 시킨 것 같았죠. 이젠 죽었구나 싶었어요. ‘개새끼마저…’ 그런데 그 놈이 달려들어 제 목을 무는 게 아니고 핥는 겁니다. 침을 질질 흘려 제 셔츠를 아주 적셔 놔요. 물론 제가 좋아서 그러는 거죠.”

김 선교사는 단기선교 의료진에게 의료 도구를 사용, 한 두 바늘 정도 꿰매는 시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집시 아이들이 맨발로 쓰레기장을 뒤지며 살기 때문에 상처가 잦아서였다. 마침 그 무렵 사냥개가 다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김 선교사는 개 입에 나뭇조각을 물리고 시술해 주었는데 그 개가 그 고마움을 안 것이다. “아, 정작 개는 은혜를 아는 구나.”

김 선교사는 이때부터 멀리 봤다. 도둑질과 마약 등에 길들여져 머리 속이 굳어 버린 이들보다 그 자녀들에게 복음을 알게 해 그들이 리더가 되면 집시 민족이 변화되리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가 장로 장립된 에반겔리와 야니다. 그리스 복음주의교회는 집시 선교의 특수성을 감안, 그들의 장로 장립을 허했다. 그리스는 헬라민족 특유의 인문적 우월주의로 배타적이다. 때문에 1100만 인구 가운데 개신교인이 1만5000여명에 불과하다. 집시 선교와 같이 ‘낮고 천한’ 사역은 아예 눈감아 버린다.

그럼에도 부부는 엎드려 집시를 섬기고, 그 교회가 자립할 때가 되면 현지 교단에 넘기고 또 다른 집시 사역지를 찾아 떠난다. 부부는 카테리니교회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고 보고 있다. 복음을 위해 정주하지 않는 ‘집시 선교’이다.

글·사진=카테리니(그리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