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의 추락세가 심상치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민주당 내에서는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녀에 대한 선호도는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한 2008년 당시보다 낮아졌다. 클린턴 전 장관의 몰락은 미 대선 초반 레이스에서 트럼프의 부상만큼이나 이변으로 꼽히고 있다.
◇‘신뢰의 위기’에 빠진 힐러리, 역대 가장 낮은 선호도=뉴욕타임스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클린턴 전 장관은 민주당 성향 유권자 중 47%의 지지를 얻어 1위다. 27%에 그친 샌더스 의원을 20% 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그러나 추세를 보면 매우 위험하다.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은 불과 한 달 새 9% 포인트 사라졌다. 같은 기간 샌더스 의원의 지지율 상승이 10% 포인트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가파른 하락세다.
특히 내년 초 경선이 가장 먼저 시작되면서 대선 풍향계 노릇을 하는 뉴햄프셔주와 아이오와주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샌더스 의원에게 큰 차이로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몬마우스 대학이 뉴햄프셔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37%의 지지율로 샌더스 의원의 43%에 7% 포인트 차로 밀렸다. CBS 뉴스의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 전 장관은 이 두 지역에서 샌더스 의원에게 크게 뒤졌다. 아이오와주에서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은 33%로 샌더스 의원의 43%에 10% 포인트 뒤졌고, 뉴햄프셔주에서는 30%에 그쳐 52%를 획득한 샌더스 의원에 22% 포인트 차이 났다.
선호도도 낮아졌다. 클린턴 전 장관이 처음 민주당 경선에 나선 2007년 8월 당시 선호도는 80~88%에 달했지만 지금은 65~77%로 떨어졌다. 클린턴 전 장관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특권의식과 타성에 젖어 소통을 거부한 게 문제=개인 이메일 사용 논란으로 대세론에 제동이 걸린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 하락은 지난 7월 중순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본격화됐다. 사과 표명을 한 뒤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클린턴 전 장관은 국무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개인 이메일을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전임 국무장관들 중 클린턴 전 장관처럼 개인 이메일로 기밀을 다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반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클린턴 전 장관이 개인 이메일로 기밀을 다루고도 국무부를 떠나면서 제 시간에 모두 반납하지 않은 것은 특권의식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또 당초 잘못한 일이 없으니 사과할 일도 없다고 버티다가 지지율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자 “잘못된 일”이라고 뒤늦게 사과한 것에서도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반응은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미 퀴니피액대학의 조사에서 유권자 중 61%는 클린턴 전 장관이 ‘정직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는’ 후보라는 반응을 보였다.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 급락 원인은 한 마디로 신뢰의 위기다. 이메일 논란을 지켜보면서 유권자들은 클린턴 전 장관에게서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을 기대하기 어렵고, 사과거부와 번복 등 해명과정을 지켜보면서 믿기 어려운 후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가 대중의 신뢰를 되찾고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힐러리 지지율 폭락, 신뢰의 위기
입력 2015-09-16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