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법무부·법원·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통신감청이 주요 이슈였다. 대검찰청이 수사기관의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이버검열 논란이 일자 ‘다음카카오’ 등이 법원의 통신감청 허가를 받은 수사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대응한 게 계기가 됐다. 국감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통신감청에 따른 사생활 침해 방지대책과 효율적 수사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법무부는 ‘법제도 개선’을 약속했고, 미래창조과학부는 “이해관계자간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 후 1년이 지났지만 법령 개정은 고사하고 제도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연구나 검토 실적도 없는 상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6일 외부 전문가 자문을 받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통신감청 제도의 문제점 등 11건의 주요 시정 요구 사항 처리결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국감 지적 사항의 처리결과 대부분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업재해 은폐현상이 만연하다는 국감 지적에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개별실적 요율제 개선 등의 대책은 미봉책이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정부가 과다한 공공임대주택 관리비 인상률을 시정하라는 요구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임대아파트 관리비 상한선 편성기준 마련을 지시했지만, 이 역시 지자체와 민간부문 공공임대주택이 빠진 불완전한 대책으로 평가됐다.
이처럼 국회의 시정요구에 정부가 제대로 된 원인분석과 사후처리를 하지 않자 국감 때마다 같은 지적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500개 넘는 등 난립한 정부 위원회의 기능 중복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 위원회의 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109개 위원회를 정비계획 대상으로 삼고 조치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정비가 완료된 곳은 19개(17.43%)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입법조사처는 “위원회의 활동 부진 여부를 판단하는 세부기준이 미흡한 데다 정비 관련 기준도 법령상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감 지적 사항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는 행태는 대의 민주주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의회가 국정조사권을 가진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감만이 국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정부가 면피만 하자는 식으로 국감에 임하는 것은 의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국민을 무시하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국감 시정 요구에도 시늉만 하는 정부
입력 2015-09-16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