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난의 다리 위에서 울부짖는 아이들…유럽 난민들의 비명

입력 2015-09-13 15:48
사진=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 다리 위에서 난민들이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유럽 난민에게 ‘고난의 다리’로 불리는 젤레즈니흐까 다리의 비명이 20여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급증한 난민이 일시에 이 다리를 통과하면서 난민을 제지하려는 마케도니아 경찰의 폭력 등 비인도적 통제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을 가르는 콘스강 위에 놓인 길이 70m, 폭 5m의 한적한 시골길에 불과했다. 하지만 독일 및 북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에게해와 터키 육로 등을 통해 그리스로 들어온 난민은 반드시 이 병목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때문에 매일 독일로 향하는 6000여명의 난민은 그리스 국경을 넘자마자 마주한 마케도니아령 다리 위에서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24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마케도니아 정부가 다리 위에 난민을 몰아넣고 강력 통제를 지속해서다.

12일 오후 5시(현지시간) 마케도니아 경찰은 다리 북쪽 끝 지점에 바리케이드 등을 설치하고 난민을 선별 이동시켰다. 난민들은 앞쪽 상황을 몰라 끊임없이 뒤에서 밀고 들어왔고 경찰은 몇 겹의 저지선을 구축해 난민을 통제했다. 20여일째 수백~수천명의 난민이 다리 위에서 강을 건너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저지선을 뚫으려는 난민이 앞으로 나오면 무차별 진압봉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 등이 인파에 밟히거나 열사병 등으로 쓰러지는 상황이 속출했다.

무엇보다 공포에 질린 어린이들은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신발이 벗겨지고 정신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유엔난민기구(UNHCR)나 비정부기구(NGO) 요원 등이 파견되지 않아 난민 스스로 안전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됐다. 마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강인도교를 건너려는 피난 인파의 아우성과 같았다.

그리스 국경에 파송된 UNHCR 종사자는 “젤레즈니흐까 다리 위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잘 알고 있으나 마케도니아 사회 시스템이 국제기구나 NGO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관여를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다섯 살배기 딸과 함께 8시간 대기 끝에 다리 위를 벗어난 시리아 난민 마무드(32)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목마 태워 버텼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제2의 에일린과 같은 희생자가 나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10일 마케도니아-세르비아 국경에서 만난 네 아이의 어머니 시실리아(35)는 마케도니아-세르비아 국경의 쉬라니쉬테역 임시 수용 막사 주변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젤레즈니흐까 다리 위에서 네 살 막내아들 등 4자녀를 잃어버렸다”며 “폭우가 쏟아지는 다리 위에서 밀고 밀리다 바리케이드를 빠져 나오게 됐는데 우리 아이들이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어머니는 실성하다시피 경찰을 붙잡고 손짓발짓해가며 호소했으나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태워져 200㎞ 떨어진 이곳 국경까지 이동했다. 그를 돕던 경찰 프레소보는 “아이들이 곧 뒤따라오니 먼저 버스를 타고 출발하라는 탑승 난민과 경찰의 말을 듣고 일단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오는 사람마다 자신의 아이를 보지 못했느냐고 찾는 것이 12시간째”라고 말했다.

글·사진=마케도니아·그리스 전정희 특파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