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시리아 난민 수용 선언 직후 유럽 난민 이동의 관문 그리스에서는 하루 6000여명의 난민이 북쪽 마케도니아 국경으로 향한다. 그리스 정부가 버스 등을 대절해 난민을 신속히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9일 그리스 동북쪽 그리스 제2도시 테살로니키에서 65㎞ 떨어진 에부조리 마을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
철로를 따라 남부여대한 난민이 국경 통과를 위해 걷고 또 걸었다. 아테네에서 국경까지 350㎞ 거리를 버스로 이동한 이들은 에부조리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시골길을 따라 5㎞를 더 걸어 국경 철책에 닿았다.
이처럼 버스로 이동한 이들은 주로 시리아 난민. 이라크 난민과 함께 유럽연합(EU)으로부터 정식 난민 인정을 받아 그나마 버스 이동이 가능했다. 그리스 정부는 난민이 자국에 머무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관광버스를 동원, 이웃 나라 국경까지 신속히 이동시킨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 등도 신속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난민 인정을 못 받는, 소위 B급(이주민)으로 분류되는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의 난민은 오로지 걸어서 이동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돈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시리아 부유층들은 난민 루트를 따라 가족 단위로 택시를 대절해 이동한다.
이날 그리스 측 철책 앞 시골길에는 줄지어 들어오는 택시가 걸어가는 난민을 향해 경적을 울리며 지났다.
국경 철책 앞은 마구 버린 옷가지 등의 쓰레기만 아니라면 거대한 야영장 같다. 일부 난민이 원터치 텐트 등을 펼쳐 피난처로 사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민은 옷 입은 그대로 쓰레기 덮인 땅 위에 앉아 초초한 표정으로 월경 순서를 기다렸다.
오후 6시. 길가 한 텐트 입구가 열리더니 하산(37) 가족 4명이 아이와 짐을 챙겨 철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들이 철로를 이용하는 것은 소위 발칸반도를 관통하는 ‘오리엔탈 특급’ 노선이 독일까지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각국 정부도 이들의 철로 이동을 막지 않고 되레 협조하는 데는 국도 및 고속도로 이용에 따른 혼잡을 막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하산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나는 다만 내 가족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할 뿐이다. 폭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어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80대 부모를 고향에 두고 1개월 전 길을 떠났다. 터키 이스탄불을 지나 에게해 한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 북쪽 그리스령 타소스섬에 머물다 10㎞ 떨어진 그리스 본토에 상륙했다. 그는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고 했다.
이날 어둠이 짙어지자 비가 쏟아졌다. 난민 캠프는 순식간에 진창이 됐다. 계속된 난민 유입으로 유엔난민기구 및 적십자사의 물품이 동났다. 일회용 우비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박스를 찢어 머리에 얹고 쭈그려 앉아 기다렸다. 마케도니아 경찰이 50명 단위로 난민 입국을 끊어 받기 때문에 이동은 더디 진행됐다.
그때 한 아이가 통증을 호소하며 울었다. 이동 과정 중 발을 다쳐 깁스 붕대한 여섯 살짜리 꼬마 무함마드였다. 히잡을 둘러싼 어머니는 “밤길을 걷다가 길 옆으로 떨어져 다쳤다”고 말했다.
적십자사 의료요원은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어서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계속 걷게 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10일에도 비가 간간이 내렸다. 기자가 국경을 넘어 에부조리와 마주한 마케도니아의 마을 젤로즈니흐까에 닿자 그리스에서와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중무장한 경찰이 젤로즈니흐까 ‘고난의 다리’에서 난민의 마을 진입을 극력 막고 있었다. 한 여경이 확성기를 들고 “밀지 말라”고 외쳤으나 서로 먼저 세르비아행 대기 버스를 타려고 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프리랜서 기자들의 카메라만 벗어나면 말을 듣지 않는 난민을 경찰봉으로 제압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 방어벽이 일부 무너지자 지휘관이 다그치며 병력을 더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난민이 뒤로 밀렸고 아이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들렸다. 부모들은 “여기 아이가 있다!”고 소리치며 아이를 들어 바리케이드 밖으로 밀어냈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은 신발이 벗겨진 채 어른들 다리 사이와 바리케이드를 빠져 나와 부모를 찾았다. 그리고 부모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공포에 질려 울었다.
마케도니아 측 난민은 그리스에서 ‘넘긴 공’과 같았다. 가난한 마케도니아는 경찰력 외에 그들을 보호할 힘이 없었다. 앞서 마케도니아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발표가 있기 전까지 이 다리에서 장갑차를 동원해 통제했다. 시위 진압용 총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젤로즈니흐까 마을 사람들은 난민들을 대상으로 생필품과 옷가지 등을 들고 나와 장사를 했다. 그리스가 적십자사, 그리스복음주의교단 등을 중심으로 난민 구호를 펼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튿날 마케도니아-세르비아 국경. 난민들은 마케도니아 남쪽 도시 쿠마노보에서 하차했다. 국경 쉬라니쉬테역과 20㎞ 떨어진 곳이었다. 난민들은 쿠마노보~쉬라니쉬테역 거리를 안고, 이고지고 걸었다. 그런 와중에도 여성들은 차도르를 결코 벗지 않았다. 메카를 향한 절도 멈추지 않았다. 유럽 사회가 느끼는 불안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난민이 지나는 마을 주민들은 대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 주민 반응과 무관하게 다급한 이들은 아무데나 소변을 보았다.
오후에 들어서자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흠뻑 맞은 아이들은 입술이 파래 떨었다. 더러 비를 피하기 위해 검은 비닐로 웃옷을 만들어 입었으나 소용 없었다.
시리아에서 공구상을 하던 압둘라(42)는 70대 부모와 보름 전 피난에 나섰다. “잠자던 중 폭격을 맞아 아내와 아이가 죽었다”고 했다. 늙은 부모 때문에 피난을 주저하던 그는 메르켈 담화 이후 전 재산을 정리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한동안 말을 멈춘 압둘라는 “정치와 종교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부패가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이 같은 피난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마케도니아·그리스 전정희 특파원 jhjeon@kmib.co.kr
[르포] 메카 향한 기도 멈추지 않는 시리아 난민들…불안한 유럽인들
입력 2015-09-13 15:26 수정 2015-09-13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