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JTBC ‘라스트’가 12일 종영했습니다. 배우 이범수도 극 중에서 맡았던 악랄한 지하세계 1인자 곽흥삼을 떠나보냅니다. 당연히 그의 다음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범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행보에 대해 전하며 25년간의 배우 인생을 한 번 갈무리했습니다. 또 “다양한 작품, 예능, 해외 진출, 준비만 된다면 뭐든 할 수 있다”며 다방면에 열려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범수는 최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그룹 알리바바가 150억을 투자해 화제가 된 영화 ‘메이지화’에 출연했습니다. 고대 원나라 황후의 유물인 용봉거울을 놓고 소동극이 벌어진답니다.
“영화는 용 문양과 봉황 문양, 둘이 합쳐져야 하나가 되는 고가의 거울을 차지하기 위해 사채업자, 도박꾼, 조폭 등이 좌충우돌하는 내용이에요. 저는 그 난리에 휘말리게 되는 한국인입니다. 놀러갔다가 엮이게 되죠. 아직 보지는 못 했어요.”
우리나라에서의 개봉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또 그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과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요. 이범수는 아주 오래전부터 리암 니슨의 팬이었다네요.
“리암 니슨은 한국에서도 이미지가 참 좋은 배우죠. ‘미션(1986)’이란 영화 때부터 그를 좋아했어요. 한 30년 전이었나? 80년대, 중학교 때 본 영화에요.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저와 리암 니슨이 십분 활용되지 않을까 합니다.”
영어를 잘 하는 아내 이윤진의 도움이 있지 않겠냐는 물음에는 “그러게요, 추측 가능하죠”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이범수의 아내 이윤진은 동시통역사 겸 사업가로, 가수 비의 영어 선생님으로도 알려졌죠.
할리우드 유명 배우와 작업을 시작했으니 미국 진출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이범수는 “대환영이다”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할리우드 좋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기회를 마다하지 않으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예능 프로그램이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죠. 제가 참여할 수 있는 컨디션이어야 합니다. 준비도 안 됐는데 하고 싶은 생각만 있다고 한다면 잘 될 리가 없죠. 역으로 말하면 어떤 제안이 오지 않더라도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라면 스스로 미국에 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여건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제 사고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작품 얘기들을 들어봤으니, 아직은 정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죠. 이범수의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코믹 연기나 예능 쪽으로 계획이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코믹 본능은 항상 살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코믹 영화를 하고 싶어한다 한들 관련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으면 못 하는 거잖아요. 요즘은 액션 영화 속의 인물이나 악한 캐릭터 같이 마초적인 게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TV 쪽으로는 절절한 사랑이야기, 멋있는 역을 보고 싶다는 분도 있어요. 일부러 안 하는 것은 아니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면 합니다.”
“예능도 관심은 있어요. ‘출연 안 한다’고 눌러 말한 적은 없으니까요. 작품 외적으로 진솔한 제 모습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될 테니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왜 못 했냐고 한다면, 본업이 배우기 때문이죠. 예전에 KBS 2TV ‘1박 2일 시즌2’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불과 며칠 전 SBS ‘기적의 오디션’ 섭외가 들어온 상태였죠. 그때 저는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를 찍고 있었기 때문에 TV 쪽은 하나 밖에 할 수 없었어요. 배우의 입장에서 제가 연기에 대해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배우라는 것을 알릴 기회라 생각해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했죠. 대중에게 트레이닝 과정이나 연기를 분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는 재미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1박2일’도 재밌었겠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이범수에게 ‘예능도 잘 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작품은 지난 2000년 방송됐던 MBC ‘동거동락’입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중에게 이범수가 재미있는 배우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죠. 15년이 지난 지금도 ‘동거동락’에 출연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가벼워 보이는 것을 싫어해서 안 나가려고 했었어요. 당시 PD님께서 영화 ‘하면 된다’를 관람하시고 저를 눈여겨보셨나 봐요. ‘동거동락’ 만들 때 저를 데려가시더라고요. 원래는 4주 만하고 빠지기로 하고 들어갔었는데, 하다 보니 반응이 너무 좋았죠. ‘너 빠지지 마라’가 돼 버린 거예요. 저 또한 재미를 느껴서 ‘끝까지 가 보자’고 생각했어요.”
당시 프로그램에서 입었던 패치가 잔뜩 붙은 밤색 항공 점퍼도 아직 갖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앞으로 예능 쪽에서 이범수를 캐스팅할 계획이 있다면 커피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호주에 가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 왔을 정도로 커피 마니아라고 하네요.
이범수는 현재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로서 ‘기적의 오디션’에서 만난 김신 등의 신예들을 키우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라네요.
“저희 소속 신인 배우들에게 엄하게 지도하는 부분이 있어요. 신인 배우니까 못 할 수도 있지, 저는 이런 걸 끔찍히 싫어하거든요. 신인이기 이전에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배우잖아요. 할 건 해 줘야 돼요. 현장에서 신인 배우랍시고 NG를 거듭 내도 용서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수하더라도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 미안해하거나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어야 하죠. 신인이란 이름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한 거예요.”
“현장에서도 저는 신인들을 먼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요. 월권으로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거든요. ‘라스트’를 찍을 때 서예지처럼 먼저 와서 물어본다면 가르쳐줍니다. 함부로 지도하려고 드는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범수는 이처럼 무척 엄격한 프로 의식을 갖고 있는 배우였습니다. 최근에는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이 제작이나 연출에 관심을 두는데, 이에 대해서도 “기회만 된다면 하고 싶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배우이지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무척 존경합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촬영해서 필요한 만큼만 편집하는 것이 멋지죠. 계산이 분명한 거니까요. 단편 영화 ‘꼭두각시’를 찍고 나니까 그런 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영화는 감독에 의도에 따라 촬영하는 거잖아요. ‘편하게 하라’거나 ‘네 마음대로 하라’는 것보다는 확실히 지시해 주는 편이 낫다고 봐요. 지금 이런 부분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서 모교인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작 배우’ 이범수가 스스로 그리는 배우 인생의 청사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전 ‘다작 배우’란 말 인정합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하던 학창시절 이미 다작을 했었어요. 다작을 한다는 건 왕성한 에너지의 지표와도 같고, 제겐 참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열아홉 살 때부터 일년에 연극을 4~5개씩 했는데, 졸업할 때 합쳐 보니 48편이더라고요. 연출도 두 편 했고요. ‘연기에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봐도 미쳐 있었죠. 제 학창시절 목표는 ‘내가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못 하는지 알고 졸업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성공이라 생각했죠.”
“저는 지금이야말로 배우 인생의 2라운드라고 생각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로도 걸음마를 떼게 됐는데, 모든 일에 더욱 열정적으로 임할 계획입니다. 스스로도 제 미래가 기대돼요. 배우로서도 누군가를 흉내 내며 살아오지 않았듯 회사 대표로서도 신인들을 발굴하고, 투자하고, 육성해서 스타가 되게끔 조력하는 데서 성취의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꿈입니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열아홉부터 다작했어요” 이범수, 연기 인생 2막 열다...kmib가 만난 스타
입력 2015-09-13 00:05 수정 2015-09-13 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