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혁신안을 둘러싼 계파갈등이 극한으로 치닫자 '재신임 투표'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으면서 당 내홍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혁신위 활동을 '실패'로 규정하고 문 대표를 압박하던 비노(비노무현) 진영은 문 대표의 '역습'에 허를 찔려 대책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의 이번 카드가 어떤 방식으로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야권지형 전체가 급변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전 당무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내홍 국면은 예정된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 대표가 당무위 의결 불과 1시간만에 갑작스레 회견을 열어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자 분위기는 일순 급변했다.
특히 비노 진영은 허를 찔렸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비노 진영은 혁신안을 지도부가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점을 내세워 중앙위까지 여론전을 벌일 계획이었다. 아울러 조기선대위를 꾸려 지도부에 대해 총선 준비에서 물러날 것을 압박하려 했으나 문 대표가 선제적으로 거취문제를 언급하자 맥이 풀린 모습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문 대표의 회견에 대해 "혁신과 총선 승리에 중지를 모을 때"라며 "통합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김한길 전 대표 역시 회견을 보고도 특별한 반응을 내지 않았다.
이번 제안에 대한 계파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선 친노·주류 진영에서는 과감한 결단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혁신안 갈등으로 당이 흔들린다"며 "총선을 위해 어차피 거쳐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비노 진영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번 제안이 '꼼수'에 불과하다면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김동철 의원은 "과감하게 살신성인을 해야하는데 무슨 조건을 걸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다른 비노계 인사도 "혁신안이 부결되면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라며 "여론조사까지 결합한 재신임 투표를 더해 생색을 내는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문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최근 당 안에서 공공연히 당을 흔들고 당을 깨려는 시도가 금도를 넘었다"고 하는 등 반대 세력을 강력히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송호창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혁신안에 대해 이견을 말하면 해당행위라는 것"이라며 "당에 대한 당원들의 걱정과 우려를 모두 기득권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라고 공개 비판했다.
이어 "문 대표는 혁신위 활동이 총선승리 상황을 만든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혁신위를 실패했다고 비난하며 '정풍운동'을 자처, 문 대표를 압박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혁신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말해야 하는데, 오히려 재신임을 말해 비켜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다른 지도부와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에 문 대표는 이날 고위전략회의에서 "상의없이 발표해 미안하게 됐다"며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당파'로 분류되는 박주선 의원은 트위터에 "문재인 살리기를 위한 '친노 총동원력'으로 계파전쟁의 비극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비주류 의원 모임인 '민집모' 소속 의원들은 긴급 회동을 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여기서는 혁신안을 중앙위에서 부결시키자는 의견이나, 어차피 재신임투표를 하느니 문 대표를 포함해 당권 주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조기 전대를 열자는 주장 등이 나왔다.
이후 내홍 국면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무엇보다 혁신안 통과 및 재신임 투표 결과에 따라 새정치연합은 물론 야권 지형 전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가 재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면 당내 리더십을 한층 강화하면서 다음 총선까지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표 개인의 대권가도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재신임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현 지도부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물론, 새정치연합 역시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극심한 혼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 역시 대권주자로서 상처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중앙위까지 계파갈등이 더 거세질지 잦아들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친노·주류 측에서는 문 대표가 직(職)을 거는 진정성을 보인 만큼, 비주류의 책임론이 힘을 잃으며 갈등이 적어도 수면 아래로 잠복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오히려 계파별 세대결 양상이 빚어져 오히려 신경전이 고조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신당론을 두고도 속도가 늦춰지리라는 분석과 함께 오히려 계파갈등이 심해져 새정치연합의 원심력이 강해지리라는 주장도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문재인, 재신임 폭탄 던지다...허찔린 비노계 부글부글
입력 2015-09-09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