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전 11시. 강원도 강릉의 한 음식점에서 주인 A씨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잠시 조는 사이 선반에 놓여 있던 전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범인은 가게 앞을 지나던 김모(26·여)씨였다. 우연히 휴대전화를 발견하고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고 한다. 강원도 춘천교도소에서 절도 혐의로 8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지 서너 시간이 겨우 지난 때였다.
지적장애 2급인 김씨는 열여섯 살 때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이제 스물여섯인 나이에 전과 36범이 됐고, 모두 절도 범죄다. 2005년 특수절도 혐의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뒤부터 범행은 일상이 됐다. 2013년 7월 야간주거침입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뒤 올 2월 다시 절도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살았다. 이 젊은 여성은 왜 상습절도범이 됐을까.
김씨는 습관처럼 물건을 훔쳤다. 지난달 10일 출소한 날부터 15일간 춘천·강릉·속초, 울산과 부산, 서울 등 전국을 돌며 휴대전화와 지갑 등 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손에 넣었다.
지난달 16일 오전 울산의 한 교회에 들어가 식당 주방에 놓여있던 휴대전화를 들고 도망쳤고, 같은 날 오후 7시 강원도 원주로 이동해 화장실을 사용한다며 고깃집에 들어가서 2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챙겨 나왔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대화하고 있던 중년 여성의 휴대전화, 판매대를 정리하고 있는 화장품가게 주인의 휴대전화, 술집 테이블에 놓여 있던 휴대전화와 지갑 등을 닥치는 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지난달 23일에는 5만원을 받고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일용직 노동자(54)와 울산 남구의 모텔에서 성매매까지 했다.
그의 범행은 지난달 25일 오전 7시쯤 서울 광진구의 한 빌딩에서 청소부 이모(74·여)씨가 “현관에 놓아둔 가방 속 지갑과 휴대전화가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하며 일단락됐다. 경찰은 이씨의 휴대전화로 “돌려주면 사례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응답한 김씨를 이날 밤 10시쯤 경기도 안산에서 붙잡았다.
경찰에 붙잡힐 당시 김씨의 가방에는 훔친 휴대전화 12개와 지갑 2개, 원피스, 상·하의 한 벌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장물을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었다”며 “죄의식이 없었고 진술도 수차례 번복하는 등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특히 진술 과정에서 ‘훔쳤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가져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들도 한결같이 “말투가 어눌하고 불쌍해보였던 김씨가 절도범일줄 몰랐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하고, 하나뿐인 언니가 일찍 결혼하자 아버지와 단 둘이 지내며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가출생활을 시작했고, 그 뒤로 가족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
이후 자연스럽게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현금을 훔쳐 밥을 먹고, 돈이 없으면 노숙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경찰은 “가족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김씨를 돌볼 여력이 없어 보였다. 결국 김씨는 살기 위해 범행을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를 가진 그에게 절도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돌봐줄 가족의 손길도, 가족을 대신해 보살펴줄 사회의 눈길도 그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간 도둑질을 하며 살아남았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8일 김씨를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향후 김씨의 생계유지를 위해 가족에게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신청토록 안내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스물여섯에 전과 36범… 그녀 10년간 살기위해 훔쳤다
입력 2015-09-08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