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내 보수-진보 갈등 격화

입력 2015-09-08 17:21
즉위 이래 이혼·동성애 등 가톨릭 교회의 각종 금기에 대해 토론의 길을 열어 놓은 프란시스코 교황이 교황청 내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7명의 고위직을 포함해 10여명의 가톨릭 교회 인사들을 인터뷰한 결과 교황의 개혁 행보로 1960년대 교회 개혁 이후 가톨릭 내부의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보수파는 교황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미국의 토머스 토빈 주교는 “가톨릭 교회가 용기 있고 예언적인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위험에 처했다”고 비난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으로 대표적 보수파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올해 초 인터뷰에서 “교황의 권한은 절대적이 아니다. (우리는) 교황의 권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는 교황에 의해 강등되기도 했다.

버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 교회가 ‘키 없는 배'와 같다고 몰아붙였다. 영국에서는 신부 500명이 공개서한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상당한 혼란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위계에 따른 복종이 뿌리 깊은 전통인 만큼 교황에 대한 불만은 교황의 입장과 가까운 진보파 성직자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진보파인 독일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자주 표적이 되고 있다.

보수파의 교황 공격에는 이탈리아 언론도 동원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교황이 교회 개혁을 염두에 두고 중용하는 인물에 대한 흠집내기성 제보를 하는 식이다.

이혼하거나 재혼한 신자가 영성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리가 바뀔 것에 대비한 보수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지난 7월에는 이 같은 변화에 반대하는 DVD가 제작돼 유럽과 호주의 교구 수백 곳에 배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가톨릭 교회가 그동안 죄악으로 치부해온 이혼과 동성애를 포용하는가 하면 기후변화와 빈곤 등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파격 행보를 이어왔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