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할 것 같았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 실무접촉은 예상 밖으로 진통에 진통을 거듭했다. 양측의 관심사가 달랐고 위임된 권한도 판이하게 달랐다. 협상은 수시로 정회를 반복했고 서로 고성이 오가는 일도 반복됐다.
전날 오전 10시50분 시작된 실무접촉은 23시간20분만인 8일 오전 10시10분쯤 종료됐다. 2013년 8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열린 실무접촉이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던 점에 비춰보면 난항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8·25 합의’ 이후 채 2주도 안돼 열려 쉽게 합의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북한은 처음부터 상봉 시기와 장소 문제만을 논의하려 들었다. 우리 측은 행사는 물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제도화 기틀을 마련하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자 회담이 공전하기 시작했다. 대표단 전원이 참여하는 전체회의, 수석대표 개별 접촉이 수시로 벌여졌고, 정회가 반복됐다. 양측 수석대표는 거의 만 하루에 가까운 시간동안 11차례나 접촉해 합의 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점차 목소리가 높아지고 격한 언쟁이 오가기 시작했다.
북한이 우리 제안에 무조건적으로 반감을 표출한 건 아니었다. 북한 측 수석대표인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은 과거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에 여러 차례 북측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우리가 우려하는 생존 이산가족의 고령화 문제에 깊이 동감했다고 한다. 전면적 생사 확인, 서신 교환, 상봉 정례화 필요성에도 여러 차례 공감 의사를 드러냈다.
문제는 권한이었다. 우리 측이 사실상 전권을 갖고 협상에 임한 반면, 북측은 실무 협의 부분에 대한 권한만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협상 도중 제도화 부분에 대한 요구가 나오면 수시로 개별 회의를 열고 평양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중간 평양으로부터 훈령을 받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협상에 나온 북측 대표단은 실무 부분에 대한 권한만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를 했지만 전향적인 합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남북 대표단이 이견을 좁힌 건 8일 새벽이었다. 합의문 초안이 몇 차례 오갔다. 양측은 최종 합의를 위한 미세 문구 조정에 돌입했다. 이후 수석대표 협상에서 최종안이 확정됐다. 상봉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북측의 주장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 외의 사안은 적십자 본회담이나 당국 회담에서 협의한다는 북측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북한 대표단은 협상 중 이산가족 상봉 외에는 어떤 이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중 ‘신(新) 밀월’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만, 나선 홍수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 금강산 관광 및 5·24재제 조치 등 다양한 얘기들이 오갈 것으로 점쳐졌지만 북한은 철저히 함구했다.
최근 우리보다 30분 늦은 평양시를 도입한 북한도 협상 과정에서는 우리 측 시간을 따랐다. 협상 장소가 판문점 우리 측인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 데 따른 것이다. 서로 구면(舊面)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과 박 위원은 협상장에서도 비교적 격의 없이 서로를 대했다. 이 위원은 박 위원을 ‘박 대표’로, 박 위원은 이 위원을 ‘덕행 선생’이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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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8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