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 두어야 했다. 당시 15세였다. 아버지는 꿈을 접은 아들이 안쓰러워 알고 지내던 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1897~1972) 화백에게 청을 넣었다. “소일삼아 그림을 배우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청전이 작고할 때까지 7년가량 전통산수화를 익혔다. 청전의 ‘무릎제자’인 석철주(65) 작가의 얘기다.
추계예술대학교 1기생이자 이 학교 출신 교수 1호인 그가 서울 성북구 고려대박물관에서 10월 18일까지 ‘몽중몽(夢中夢)’이라는 타이틀로 회고전을 연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50년이고 작가로 활동한 지 30년째다. 대학교수 정년퇴임 기념전이기도 하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독’ 시리즈와 화분 속 식물을 그린 ‘생활일기’, 최근작 ‘신몽유도원도’ 등 100여점을 내놓았다.
8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스승 얘기부터 꺼냈다. “선생님께서 병원에 실려 가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 그리는 것을 곁에서 봤습니다. 작가는 모름지기 벼루에 먹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작업해야 한다고 하셨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술사에 획을 긋는다기보다는 세상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끊임없이 모색한 작가는 5년마다 작업에 변화를 드러냈다. 1985년 첫 개인전에 ‘탈춤’을 모티브로 역동적인 그림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1990년 ‘독 그리는 작가’로 유명세를 탔고 2000년 ‘생활일기’와 2005년 ‘몽유도원도’ 시리즈를 발표했다. 2010년 ‘자연의 기억’에 이어 올해는 ‘몽유도원도’ 화면에 격자 형식의 문양을 넣은 ‘신몽유도원도’를 선보인다.
그는 1990년부터 서양물감인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업 방식은 일필휘지 붓으로 그려내는 동양의 정신을 그대로 따른다. 그의 작품에 올려진 물감들은 여느 서양화 물감과는 달리 수묵화의 번짐 효과를 여실히 드러난다. 바탕색을 칠한 뒤 마르기 전에 물로 캔버스를 지워내고 다시 붓으로 그리면 아래층의 물감이 배어나오는 효과다. 물로 그리는 그림인 것이다.
그의 그림은 마음속 풍경, 꿈속의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고요한 자연의 힐링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교수직을 떠나 전업 작가로 거듭나는 시점에 회한을 없을까.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들지 못하고 제자에게 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요. 자연을 벗 삼아 좀 더 자유롭게 붓질을 하고 싶어요.”(02-3290-151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석철주 추계예대 교수 회고전을 가다 '몽중몽' 고려대박물관 10월18일까지 100여점 전시
입력 2015-09-08 16:46 수정 2015-09-08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