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영화 ‘베테랑’에 이어 ‘사도’에서도 미친 존재감 발휘하는 유아인 "500만만 돌파해도 감사하죠"

입력 2015-09-08 16:31
요즘 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유아인(29)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이준익 감독의 신작 ‘사도’에서도 비극과 열정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완득이’(2011)에서 우직하고 집념 있는 소년 같았던 그의 연기가 물이 올랐다. 지난주 시사회에 이어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 아는 내용이다.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숨지는 사도세자. 유아인은 점점 광적으로 변모해가는 외로운 사도로 아버지 영조에 맞서는 장면에서 실제 돌바닥에 머리를 찧는 열연으로 이마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상처 없이 멀쩡하다는 그는 “촬영 내내 주어진 운명에 의문을 던지는 사도의 기질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도세자는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문제는 다 아는 사실을 얼마나 차별성 있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했어요.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와, 이랬어?’하고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세상 모든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운명을 걸어야 하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을 왕과 세자를 통해 들려주는 거지요.”

시사회 때 송강호는 “유아인은 열아홉 살 차이 나는 후배지만 대배우다.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깊이와 열정, 자세가 있다”고 칭찬했다. 이에 유아인은 “선배님과 함께한 작업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였다. 어떻게 하면 부족하지 않은 파트너로 마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극중 둘 다 고집이 센 캐릭터인데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고 털어놨다.

영민한 세자에서 영조의 질책에 서서히 광기를 드러내다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도가 처한 상황에서 오는 고독, 아버지와 어긋나며 쌓이게 되는 울분, 영조에게 사랑 받는 세손(정조)에게 느끼는 콤플렉스까지 감정 변화를 진실 되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운명을 스스로 거역하는 미운 오리새끼라고나 할까요.”

혜경궁 홍씨 역으로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문근영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동갑이었대요.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피눈물 나는 운명을 겪었으니 그 참담함이야 오죽했겠어요? 그런 감정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했어요. ‘깡철이’(2013)에서 엄마와 아들 사이로 호흡을 맞춘 김해숙 선배가 이번에 할머니 인원왕후 역을 맡았는데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러고 보니 ‘사도’에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과 ‘베테랑’의 배우가 동시에 출연한다.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없을 리 없다. 유아인은 “영화를 크랭크인 할 때 스태프와 출연진이 제발 500만 관객만 되면 좋겠다고 목표를 정했다”며 “‘베테랑’이 이렇게까지 터질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이번 영화도 ‘암살’과 ‘베테랑’의 기운을 받아 관객이 많이 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역사의 비극이지만 중간에 유머와 해학도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있으니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할 것 없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홍보했다. 말을 하는 중에도 반듯한 자세로 다소의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감이 넘치는 유아인. 귀여운 청춘스타에서 폭넓은 연기파 배우로 성큼 올라선 그에게서 한국 영화계의 밝은 앞날을 보는 듯했다.

'베테랑' 천만 돌파를 행복에 겨워하는 것 보다 이것저것 걱정하고, 거만해질까봐 생각한다. 행운인데 내것인양 여기면 안된다.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덕분에 믿을 만한 배우라는 신뢰감이 조금 생겼다고 생각한다. 더 성장하고 우연이었네, 요행이었네 그런 말 듣지 않아야 한다. '사도'도 평이 좋아 다행이다,
'베테랑'은 오락성이 강하고 웰웨이드 영화다. '사도'는 워낙 강하다 보니 호불호가 나눠질 수 있다. 평이 좋아 안심이다. 솔직히 엄청 떨면서 봤다. 영화 찍으면서 어쩔 수 없는 것은 포기하자, 더 강렬하제 만들어보자, 사도 얘기의 진부함 익숙함 화법을 우직한 돌직구 같은 방식으로 밀고 나갔다. 드라마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정통성 있게 가자, 방법 안에서 혼란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짝은 것 같다.
특별하게 공부한 것은 없다. 관련 자료나 다큐와 서적 봤다. 사도세자에 대한 해석이 그저 광인일 뿐이었다, 꺾여진 심지 등 의견이 분분하다. 절대악도 없고 절대선도 없다. 영조가 악이냐 사도가 선이냐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연민과 인간적인 공감 비극을 좋아하고 워낙 비극 안에서 매혹적 에너지 뿜어낼 수 있다. 계속 갇혀있고 호흡 조절 시간 세밀하게 콘트롤해서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평가와는 별개로 연기력은 잘 모르겠고 만족스럽다, 500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베테랑'도 비극의 인물이다. 서자 출신의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같은 영화는 아니지만 처음엔 희망 찾아가는 소년 연기 했고 밝고 유쾌하고 발랄하고 어둡고 심연 깊숙한 연민과 고독을 가진 인물이다. 끊임없이 뿜어내는 그런 에너지 사도 이상 뿜어낼 작품이 있을까?
시나리오 보고 이준익 감독의 사도라는 키워드만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시간을 좇아 흥미진진하게 힘차게 달렸다. 간을 좀 봤다. 틀림없이 나한테 올건데 한류스타도 아니고 드라마 스타도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아니까 감독이 나한테 줘야 하는 거 아니야?하고 생각했다. 너무 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너를 두고 쓴 거야 진심이야라고 감독이 말했다.
한류스타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연기 잘하고 싶어하고 상황이 흘러가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우가 아니다. 꾸불꾸불하다가 좋은 순간이 맞았다. 물길이 막힐 수도 있다. 우직하게 길을 걸어오고 있다. 천만 관객 덕분에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이방원 연산군 감정의 선이 굵은 역할 하고 싶어한다. 사도는 꿈꾸왔던 역할인데 이를 맡은 행운아가 어디 있겠나.
아카데미 출품은 최종 오르는 건 송강호 선배님이 회원이니 됐으면 좋겠다. 출품된 것만 해도 영광이다. 주연배우 꿈은 떠날 수도 있겠다. 끝까지 가봐야지 두 가지 마음 지금도 그렇다. 충무로를 주름잡으며 살고 싶고 떠나고 싶기도 하고 20대 후반으로 살아왔으니까 배우라는 것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행운이다. 연기도 달달달달이 아니라 먼 산 보고 생각하고 그런다. 이러다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사도를 연기하고픈 생각이 든 것은 비극이고 아버지라는 코드 때문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다. 대면대면하다. '깡철이'는 엄마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고 아버지에게는 '사도'를 보여드리고 싶다. 뒤주에 갇혀 있는 상황은 '주홍글씨'를 생각했다. 트렁크에서 몇날며칠 지내면서 감정변화도 있고 헛것도 보이고 모기랑 얘기도 하고 그랬다. 아버지가 참 독하다, 모질다고 생각했다,
문근영 공감 코드는 붙임성이 좋고 밝고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작품 얘기 많이 하고 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나한테 오빠 오빠 그랬는데 나는 "선배 선배님"하고 불렀다. 정조로 나온 소지섭은 아빠보다 잘 생겨가지고 영화를 보는데 짜증났다. 진짜 잘 생겼다.
500만만 들어도 너무 감사할 거 같다. 더 들수록 좋고 보너스도 받고 하겠지만 서운하지 않겠다. 제임스 딘 같은 역할, 청춘을 대변할 수 있는 역할 하고 싶다. 네가 뭔데 청춘 대변하느냐고 할지 모른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하고 싶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