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찾아나서는 난민들을 비난하지 말라’

입력 2015-09-07 16:33 수정 2015-09-07 16:40
시리아에서 유엔난민기구 대사로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안젤리나 졸리. UNHCR

[안젤리나 졸리의 7일 영국 더타임스 기고문 ‘더 나은 삶을 찾아나서는 난민들을 비난하지 말라’]

근래 역사에서 세계 난민 위기를 초래한 환경과 그 원인을 해결해줄 리더십이 이만큼 절실하게 요구된 적은 없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서 유럽 국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난민 행렬을 보면 이 사실은 분명해진다.

시리아의 분쟁은 고통 받는 이들을 만들어냈다. 고통은 시리아 전체에 퍼졌고 이제는 유럽 해안까지 닿았다. 시리아인들은 폭탄과 화학 무기, 강간과 학살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들의 조국은 킬링필드가 됐다.

전쟁을 몇 년이나 버텨온, 혹은 난민캠프에서 구호품에 의지해 살아온 이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가 그들처럼 공포에 직면하고, 희망이 없고, 국제정치에서 갈등을 풀려는 의지 자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거라 말할 수 있을까.

시리아인들이 조국에 정치경제적 자유를 부르짖고 나서야 우리는 그들을 인식했다. 그들의 가족이 집에서 포탄에 맞는 모습에, 아이들이 건물더미에 깔린 모습에, 극단주의자들에게 점령된 도시의 모습에 우리는 분노했다. 유럽에서건 어디서건 시리아인들은 동정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지난 몇 주간 우리는 많은 유명 인사들과 갈수록 더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도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난민 행렬이 환영받는 것을, 새로운 봉사와 도움이 가는 것을 목격했다. 최근 몇 년 새 처음으로 난민들이 뉴스의 토론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더 난민들을 위한 노력이 발전해야 하며, 또 이를 시리아 분쟁 뿐 아니라 세계 난민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바꿀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심장 뿐 아니라 머리를 써야한다.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외교에도, 올해뿐 아니라 미래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도 마주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도움을 위한 책임이 지리적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범세계적 인권과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 문화, 인종을 초월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일반적인 명명이 아닌, 가장 고결한 이상에 맞춰 살아야 한다. 유럽뿐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가 이 문제 해결에 참여해야 한다.

두 번째 마주해야 할 사실은 현재의 난민 행렬이 유럽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치안면에서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각국 정부는 자국에서 예상되는 결과를 해결하고, 또 난민들을 융합시키기 위한 자원을 찾아낼 책임이 있다. 시리아 인접국들은 수년간 훨씬 더 많은 짐을 져 오면서 모범적인 관용을 베풀어왔다. 이제 이들에게는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모든 국가와 정부는 국제적인 책임과 자국 국민들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세 번째는 이러한 긴급 상황에서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경제 이민자들과 그들 목숨에 즉각적인 위협을 느껴 탈출하려는 난민들을 구분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비극적인 환경에서 국경을 넘는 모든 이들의 인권과 존엄은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의 요구도 이해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찾는 이들 그 누구에게라도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난민들은 박해와 죽음으로부터 당장 벗어나야 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권리는 국제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효과적인 대우와 감시가 중요한 이유다. 이로 인해 각국의 주장도 비판이 가능해지며, 보호 역시 필요한 이들에게 확대될 수 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난민들을 환영해주더라도 시리아 분쟁이 계속된다면 문제는 계속 커질 것이다. 위기가 계속되도록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인데다, 난민을 계속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해서 문제를 풀 수도 없다. 우리는 분쟁을 끝맺을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시리아 전쟁이 시작된 이래 유엔 안보리가 이 지역을 방문한 적 없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외교를 시작하는 데 있어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게 핵심이란 건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익히 아는 사실이다. 4년 전 제네바에서 시작된 평화는 이미 끝이 났다. 이란 핵협상에서 생긴 긍정적인 에너지도 아직까지 시리아 분쟁에 물리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시리아 분쟁은 국제 거버넌스 위기의 일부다. 지난 10년간 난민 인구는 두 배로 늘어 6000만에 달했다. 이는 지속불가능한 상황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이 상황보다 지금 세계의 상태를 잘 말해주는 것은 없다. 이제 난민이 아닌 정부가, 장기간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런 난민사태를 맞은 게 처음도 아니고, 또 이번 사태가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유럽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90년대의 발칸반도 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조국은 난민들을 돕는 전통 위에 세워졌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답을 내어놓느냐가 우리가 어떤 나라인지를, 우리 인류애의 깊이를, 민주주의의 힘을 규정할 것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