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영화와 손잡고 중견 조덕현이 재현한 독거노인의 꿈

입력 2015-09-06 21:02 수정 2015-09-06 21:21
작가 조덕현과 배우 조덕현 영화 청춘 쌍곡선 배경.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집 한 채가 들어섰다. 단칸방에는 선풍기, 배불뚝이 TV 등이 소품처럼 놓여 있어 드라마세트장을 연상시킨다. 이 방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 독거노인은 1930∼50년대 영화판에서 단역을 전전했던 가상의 주인공이다.

섬세한 회화기법과 가상 및 실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전시구성으로 대중을 만나온 중견작가 조덕현(58)이 7년 만에 개인전을 마련했다. 전시제목은 ‘꿈’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남자의 인생과 꿈에 관한 서사를 상징한다.

장르 간 협업을 추구해왔던 작가는 이번에 한발 더 나아갔다. 한국전쟁 때문에 영화도, 가족도 잃게 되는 역사적 개인을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구성 등을 처음부터 소설가 김기창씨와 의논했다. 2013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가인 그는 1년간의 협업 결과를 ‘하나의 강’이라는 단편으로 만들어냈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작가 이름을 딴 조덕현이다. 영화 ‘7번 방의 선물’ 등에 출연한 동명이인의 배우 조덕현이 이 노인을 연기하는 영상도 제작돼 전시장에서 틀어준다. 소설 작품도 비치했다. 미술과 문학, 영화의 유쾌한 결합이다.

노인의 비참한 현실을 설치와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그가 추억하는 과거, 결코 손에 잡히지 않았던 성공은 흑백 사진 같은 2차원적 회화로 보여준다. 흑백사진을 정밀 소묘하는 작업을 주로 해온 그의 장기가 발휘됐다. 한형모 감독의 1950년대 영화 ‘청춘쌍곡선’,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가 열연했던 로맨스 영화 ‘카사블랑카’,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복싱 영화 ‘키드 갈라드’ 등의 주요 장면에 배우 조덕현을 슬쩍 집어넣는 식이다. 그레타 가르보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통해 노년의 망상을 시각화한다.

이번엔 캔버스가 아니라 한지에다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한지에 그린 연필의 물성이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추억의 영화 장면만큼 흡입력 있는 소재는 없다. 명작을 패러디한 그의 작품은 주제를 풀어가기에 효과적이고 관객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적이다. 작가가 상당히 전략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 첫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등 흑백사진을 재현해왔던 과거작품들도 같이 내놓았다. 컬렉션을 모아놓은 초대형 블랙박스를 전시한다는 콘셉트를 빌어 구작을 밉지 않게 소개하고 있다.

커다란 흰 천 뒤에 살아있는 덩굴식물을 배치하고 잎의 그림자들이 수묵화처럼 비치게 하는 신작 ‘음의 정원’도 공개했다. 현대음악가 윤이상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작가는 “음악과 미술이 어떻게 호환하고 합일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동백림 사건에 희생됐던 윤이상의 삶이 갖는 서사를 빼고 그의 음악이 주는 서정적인 느낌을 공간에 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 10월 25일까지(02-2020-206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