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훈장이 자살 계기?…사내 왕따로 자살한 최연소 임원 업무상 재해 판결

입력 2015-09-06 09:50 수정 2015-09-06 13:55
사진=서울행정법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회사에서 업무상 극심한 스트레스와 직장 내 따돌림으로 자살한 것은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김병수 부장판사)는 1년이 넘는 심리 끝에 숨진 통신회사의 직원 이모씨(사망시 46세)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6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대학을 마친 1989년부터 LG 인터넷·통신 계열사에서 일하다 2004년 LG파워콤에 영입됐다. 자신을 점찍어 데려온 회사 임원은 2006년부터 대표이사에 올라 이씨는 큰 신임을 받으며 사내에서 승승장구했다.

2010년 LG텔레콤이 LG파워콤과 LG데이콤을 흡수합병해 LG유플러스를 출범시키며 이씨도 LG유플러스로 편입됐다. 그는 그간 성과를 인정받아 입사와 동시에 상무로 발탁됐다. 상무 중엔 최연소였다. 평균보다 4∼5년은 빠른 경우였다.

IPTV라는 새로운 분야를 책임지게 된 이씨는 고군분투했다. 하루 평균 13∼15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주말에는 거래처 접대를 위해 골프 모임에 갔다. 골프 모임이 없으면 출근해 일을 챙겼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10년과 2011년 매출은 괜찮았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많아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흑자 전환을 꾀하던 2012년엔 SK텔레콤, KT와 경쟁에서 뒤처지며 시장점유율이 점점 떨어졌다.

상황 타개를 위해 LG유플러스는 ‘실적 두 배 증가 운동’을 벌였다. 2012년 3월 89만명인 가입자를 그해 말까지 200만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였지만 가입자는 7월 말까지 95만명에 그쳤다. 부진을 탓하는 화살은 이씨에게 집중됐다.

그를 괴롭히는 건 비단 실적만이 아니었다. 세 회사가 모인 LG유플러스 내에선 파벌이 형성됐고 가장 큰 세력은 합병의 본류인 LG텔레콤 출신이었다. 이씨 같은 LG파워콤 출신들은 LG텔레콤 출신 때문에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꼈다.

특히 이씨를 발탁한 LG파워콤 전 대표이사는 이씨의 직속 본부장으로 있다가 2012년 좌천됐다. LG텔레콤 출신의 새 본부장은 이씨를 배제하고 그의 아래 직원인 팀장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다.

그러던 중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다. 2012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내 IPTV 가입자 500만명 달성을 기념해 이씨에게 동탄산업훈장을 주기로 한 것. A씨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방통위가 결정한 일이었다.

새 본부장은 본부 공식회의에서 “부회장님이 ‘대표이사에 앞서서 상무직급에 있는 이씨가 훈장을 받는 것이 불쾌하다. 훈장을 취소하고 싶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조직이 이씨에게 내리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씨는 그 이후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회의를 들어가도 주도를 하지 못했다. 공황장애가 온 거 같다고 했다. 주위 사람에게 “사는 것이 재미 있느냐”며 “그동안 회사와 집만 다니고 취미나 다른 일이 20년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사내 소문은 빨랐다. 이씨는 과거 친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등을 돌린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내 이메일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막다른 곳에 몰린 이씨는 2012년 8월 10일 오전 7시30분쯤 출근한다며 집을 나선 뒤 자신의 아파트 14층 난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없었다. 대신 처남에게 “우리 아이들과 처를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LG유플러스에서 ‘최연소 상무’까지 달았던 이씨는 그렇게 회사에서 잊혀져갔다. 유족은 그의 죽음이 회사와 연관 없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그정도 업무 부담이나 실적 압박은 일반적인 직장인 수준”이라며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은 결국 소송을 냈다. 이씨가 사망한 지 3년하고 16일이 더 지난 뒤인 지난달 21일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