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어린이 에일란 쿠르디(3)의 죽음이 유럽의 이기심을 씻어낼 수 있을까. 난민들의 참상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여전히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서로 날을 세우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일(현지시간) 쿠르디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유럽이 시리아 아이의 사진을 보고도 난민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바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허핑턴포스트는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뭐라도 좀 하라”고 지적했다.
난민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는 난민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나라이자 난민들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독일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지난 6월까지 난민들이 망명 신청을 가장 많이 한 EU 국가는 독일로 망명 신청자 수가 54만명을 넘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4월 리비아 해안에서 벌어진 난민선 전복 참사 이후 끊임없이 EU 정상들에게 난민 수용 부담을 서로 나누고 체계적인 난민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첫 EU 도착지와 상관없이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하기도 했다. 전날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는 시민들이 기차로 도착한 난민들을 위해 생수, 음식 등을 제공하는 등 환영했다.
이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곳은 영국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의 난민 분산 수용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는가하면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들의 무리를 ‘떼’라고 비하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쿠르디의 죽음을 접한 이후에도 “더이상 난민을 받을 수 없다. 영국이 더 많은 난민을 받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아 비난은 더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비인도적 태도에 영국 내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팀 패런 영국 자유민주당 당수는 캐머런 총리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Enough is enough)”면서 “시리아 어린이의 충격적인 사진은 캐머런에게 잠에서 깨라고 말하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환멸을 느낀 영국인들은 ‘영국 내무부가 난민들에게 즉각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넷 청원 사이트에 나흘 만에 13만5000명이 서명했다.
난민 문제에 비협조적인 것은 영국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을 그야말로 ‘떼어버려야 할 혹’처럼 여긴다.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난민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난민 대부분이 경제적 이유로 넘어오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코 경찰은 전날 브레클라브 역에 도착한 난민 200여명의 팔에 펜으로 숫자를 표기해 과거 나치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팔에 번호를 적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럽이 동서로 갈려 옥신각신하는 동안 오스트리아에서는 또 16~17세의 시리아 난민 청소년 20여명이 숨쉬기조차 힘든 트럭 화물칸에 갇혀있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EU가 오는 14일 개최할 긴급 내무장관 회의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올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스틴 포시스 국제어린이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대표는 “쿠르디의 참혹한 죽음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모으고 EU를 압박해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방안을 도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유럽, 이래도 계속 뒷짐만 질래
입력 2015-09-03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