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됐던 북한이 ‘빈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행사에 북한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참가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다른 국가 정상이나 외교사절과도 별다른 면담 계획을 잡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앞선 전날(2일) 시 국가주석 내외가 주최한 공식 환영만찬에서도 최 비서는 시 주석과 잠깐 조우하긴 했지만, 의미 있는 만남은 갖지 못했다. 최 비서가 3일 베이징 텐얀먼(天安門) 성루의 말석(末席)에 앉아 열병식을 지켜봐야했던 사실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초라한 현주소’를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정부 소식통은 “최 비서가 중국 및 여타 참석국 수반들과의 특별한 일정을 잡지 못한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친서를 시 주석에게 전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타국과의 각별한 관계를 드러낼만한 어떤 움직임도 없다”고 밝혔다.
각국 정상과 대표단들이 중국에 도착해 치열한 외교 탐색전을 벌였던 전날에도 최 비서는 눈에 띌만한 움직임을 드러나지 않았다. 오후 5시쯤 중국에 도착한 그는 환영만찬에만 참석한 뒤 종적을 감췄다. 행사장에서 이뤄진 단체 접견에서 최 비서는 시 주석과 인사를 나눌 기회는 가졌지만 역시 별도 개별면담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장 자리도 박근혜 대통령이 ‘헤드테이블’에 앉은 것과 달리 무대 쪽 제일 끝자리에 배치됐다.
다음날 치러진 열병식 이후에도 유의미한 회동은 포착되지 않았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주요 행사가 끝난 뒤 최 비서가 돌아가기 전 시 주석과 별도로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확률은 높지 않다”고 했다. 최 비서는 중국 입국 시에도 고려항공 특별기가 아닌 일반항공편을 타고 중국에 도착해 김 제1비서의 특사 자격이 아닌 단순한 대표단 단장 자격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북한이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 관계의 극적인 회복을 모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비교되는 중국 내부의 냉랭한 반응, 한·중 정상회담을 통한 대북압박 등이 구체화되면서 북·중 사이의 위기만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당분간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중 관계 발전에 대한 앙금이 큰 데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며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고 주장하는 북한으로선 다음 기회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할 개연성이 크다. 김 제1비서가 참석하거나 특사 파견 등으로 먼저 화해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대중 관계를 전담해온 최 비서를 통해 중국 속내만 떠본 것도 이 때문이란 해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재 북한의 대외관계 1순위는 중국이 아닌 러시아”라며 “최 비서는 북·중 현안 타결이 아닌 축하 사절단 정도의 역할만 하고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쉽지 않은 북중 관계 개선
입력 2015-09-03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