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외법권’, 죽은 개연성을 벌떡 일으킨 배우들의 호연

입력 2015-09-03 00:01

*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27일 개봉한 영화 ‘치외법권’은 능력은 출중하지만 경찰청장도 포기할 정도로 골칫덩어리인 두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나쁜 놈’만 보면 우선 주먹부터 나가는 프로파일러 정진과 사건 해결보다는 여자 꾀는데 관심이 더 많은 유민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사이비 종교 교주를 물리칩니다. 배우 임창정과 최다니엘이 각각 정진과 유민으로 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다수의 작품에서 연기력을 증명해온 배우들인데다가 코믹 연기에는 정평이 나 있는지라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치외법권’은 심각하게 부족한 개연성 때문에 그저 임창정과 최다니엘의 호연에만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악 구분과 기승전결이 매우 분명해서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오락가락하는 캐릭터 때문에 몰입하기가 힘듭니다. 이야기와 연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기 보다는 연기가 이야기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를 감독과 출연진은 ‘B급 정서’라고 표현했지만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말이 안 됨’과 ‘B급 정서’가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죠. 소위 ‘B급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소재를 이해시키기 위해 영화 속 세계관을 얼마나 촘촘하게 짰는지를 생각한다면 B급이라는 표현의 남발이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주인공 정진과 유민은 각각 분노 조절 장애와 성충동 조절 장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사람을 때리고 싶어서 경찰이 됐다거나, 여자에 미쳐 수사를 뒷전에 둔다거나 하는 설정이 엄청나게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성격을 병명으로 구체화시킨 순간 두 캐릭터를 이해하기는 더욱 쉬워집니다. 뭔가 더 새로워 보이는 효과도 나죠.

특히 임창정이 맡은 정진의 경우 ‘미스터 LG’서용빈의 이름이 마킹된 점퍼를 입고 악당들 앞에 서서 “LG 트윈스의 팬이거나 오늘 새벽에 류현진 경기를 봐야 하는 사람은 열외”라며 황당한 대사를 던집니다. 일단 사정은 봐주겠다는 모종의 온정주의랄까요? 캐릭터 색깔이 매우 뚜렷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프로파일러였다는 최초의 설정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완전히 소멸해 버립니다. ‘치외법권’의 정진은 심리 분석은 커녕 머리를 쓴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쁜 놈들을 때려 잡겠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살아온 듯한 정진이 유민과 팀을 이루는 순간, 특별 진급 약속이라는 속물적 가치가 그를 지배합니다. 돈과 명예에 관심이 없는 정진에게 특진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본다면… 그의 행동에 당위성이 희미해지죠.

점점 당초의 모습을 잃어가는 정진 캐릭터에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임창정의 연기력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양아치’ 연기하면 임창정 아니겠습니까(톱3을 꼽으라 한다면 황정민, 임창정, 류승범이 떠오릅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지” “X자식들. 국민들 피눈물 빨아 먹고” 같은 상당히 복고적이고 직관적인 대사에도 그의 연기는 묻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캐릭터에 끼얹힌 어색함을 특유의 불량함으로 지워내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총을 한 번 맞아 보고 싶었다며 깐족대다가 진짜로 총을 맞는 등의 당황스러운 장면도 코믹하게 살려냈습니다. 진지하게 쓰러졌으면 망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동엽 감독이 “배에 총을 맞으면 싸울 수가 없기 때문에 스친 것으로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끝까지 장난인 줄 알았을 정도로 임창정은 이 장면을 잘 소화했습니다. 이런 상황, 저런 상황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그의 연기는 곧 이 영화의 개연성이었습니다.

유민(최다니엘 분)과 성기(장광 분)는 정진에 비해서는 그나마 일관성이 있는 인물들이죠. 성충동 조절 장애가 있는 엘리트 형사 유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를 밝힙니다. 또 사이비 종교 교주 성기는 올곧게 악하고 뻔뻔하며 자기 본위로 행동합니다. 두 배우 모두 잠깐씩은 널을 뛰는 캐릭터를 잘 붙잡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끌었습니다. 최다니엘은 능글맞고 애교있는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습니다. 여자 경호원과 갤러리에서 결투를 벌이다가도 “내가 이기면 나랑 사귀는 거야”라고 하는데, 잠깐 설레더군요. 또 장광은 초점 없는 눈으로 탐욕의 절정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여신도들을 모아 놓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 보여준 뻔뻔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이처럼 ‘치외법권’의 최대 볼거리는 배우들의 호연이지만, 그 중에서도 액션은 따로 언급하고 싶을 만큼 출중합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장면만 본다면 ‘막싸움’과 정통 무술 느낌의 몸짓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그림이 나왔습니다. 조금 길다 싶기도 하지만 액션 장면이 나올 때마다 숨통이 트였습니다. 최다니엘의 긴 팔다리가 특히 돋보였죠.

법과 같은 논리적 잣대가 통하지 않는 두 ‘또라이’ 정진과 유민, 그리고 법이 벌하지 못하는 ‘나쁜놈’ 성기 모두 치외법권에 속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중의적으로 풀이되는 까닭입니다. 두 치외법권의 부딪침에서는 결국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때 발생하는 쾌감이 존재합니다. 또 전염병과 대형 사고들을 언급하며 “국가는 나를 지켜주지 못해. 그러나 나를 믿으면 타이슨, 알리가 와도 끄떡없다”고 말하는 성기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것을 보면 시의성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외법권’은 이처럼 미덕들이 많아서 더욱 안타까운 영화였습니다. 임창정과 최다니엘을 ‘치외법권2’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듯합니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