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에 침묵지키는 북한 왜?

입력 2015-09-02 17:34
중국이 70주년 전승절을 국제행사로 성대하게 치러 ‘대국굴기(大國屈起)’ 진면목을 선보이려는 상황에서 ‘혈맹’을 자처해온 북한은 내내 침묵만 지키고 있다. 권력서열 6위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사절로 보냈을 뿐 대규모 참관단도, 진심어린 축하 논평도 일절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의 침묵 배경에는 이미 중국 5세대 지도자와 북한 3세대 지도자 사이의 희석된 동맹 열기, 더 이상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책임대국’정책, 이런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 북한 지도부의 ‘불안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중국 전승절에 대해 북한이 드러낸 ‘액션’은 최 비서의 파견뿐이다. 최 비서가 김 제1비서 친서를 들고 갈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출발부터 ‘격(格)’이 달라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전승절은 우리로 치면 광복 70주년에 해당하는 행사로, 항일 운동을 권력기반으로 삼은 북한으로선 김 제1비서가 직접 대규모 참관단을 이끌고 갈만한 했다. 하지만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8·25 합의’를 강조하는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만 내놨다. 한·중 관계가 공고해지는 데 대한 ‘시샘’만 내비친 셈이다. 중국은 처음부터 김 제1비서의 ‘최고예우’ 요구를 무시한 채 행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의 냉랭한 관계는 앞으로도 반전 계기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에 이은 5세대 지도자지만, 자신의 권력기반을 ‘인민의 지지’에서 찾고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세습권력을 물려받은 김 제1비서를 당초부터 무시했다는 뜻이다. 과거의 북·중 혈맹 열기가 이젠 사라졌다는 의미다.

미국과 세계2강(G2) 경쟁을 벌이는 중국에게 북한의 존재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이 ‘책임대국’ 구호를 내걸고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운신을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북한은 애써 중국의 존재를 외면하다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셈이다. 중국의 성대한 잔칫상은 이런 북한의 어정쩡한 입지를 드러내는 굴욕의 무대가 된 셈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