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대통령이 보여준 '우아하게 죽음을 맞는 법'

입력 2015-08-31 17:03 수정 2015-08-31 17:11
지난 20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있는 지미 카터 센터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유투브 동영상 캡쳐)



빨간 넥타이를 맨 90세 노신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기자회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윽고 마이크 앞에 앉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주섬주섬 준비해 온 종이를 품안에서 꺼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왔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세상 그 어떤 사람만큼이나 축복 받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오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위치한 지미 카터 센터에서 조금 특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의 뇌에서 암이 발견됐다고 알렸다. 신장의 암세포를 제거했으나 뇌로 전이된 암세포를 기자회견 보름 전에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기자들과 아내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입을 연 카터 전 대통령은 살면서 느낀 소회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대통령 재임 시절 인질 구출작전에 실패했던 일, 퇴임 뒤 구호 활동을 하면서 기생충의 일종인 기아나 벌레를 퇴치하지 못한 일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 그는 “이제 신에 손에 달려 있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렇듯 담담히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그를 두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 사흘 뒤, 퇴임 후 30여 년간 성경을 가르쳐온 주일학교 강단에 섰다. 40명 정도가 평소 카터 전 대통령의 성경교실에 참석했지만, 이날은 700여 명이 몰렸다.

30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미국의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 역시 지난 2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임박한 죽음을 알렸다. 그는 ‘뇌의 탐험가’로 불릴 정도로 저명한 학자였음과 동시에 희귀질환 환자들의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재능을 아름답게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NYT는 그를 두고 ‘의학계의 월계관을 쓴 시인’으로 부른 바 있다.

NYT 기고문에서 그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면서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고 묘사하며 기고문을 끝맺었다.

“두려움이 없는 척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강한 느낌은 고마움입니다. 저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걸 받았고 돌려주었습니다.”

‘투 썸즈 업(Two Thumbs Up)!’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론으로 퓰리쳐상을 받은 평론가로도 유명한 그는 2013년 71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 내놓은 자서전 ‘삶 그 자체’에서 죽음을 앞둔 심경을 담담히 써내려갔다. 이버트는 이 글에서 화가 뱅상 반 고흐가 쓴 글을 인용하며 글을 끝맺었다.

“타라스콩이나 로엔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우리는 별에 가 닿기 위해 죽음을 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는 별에 가 닿을 수 없고, 죽어서 기차를 타고서야 그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콜레라, 결핵, 암이 하늘로 가는 교통수단일 수도 있겠습니다. 증기선이나 버스, 기차가 지상의 교통수단이듯 말입니다. 늙어서 조용히 죽는다는 건 걸어서 하늘에 가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