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선생님. 레 샵(#)을 내야 하는데 계속 레가 나와유. 끼니를 영 부실하게 때웠는지 아랫배에 힘이 안 들어가나 봐유~.”(웃음)
공연을 앞둔 합창단 연습실에 긴장감 대신 웃음꽃이 피었다. 족히 서너 개의 지역 사투리가 뒤섞여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정갈하게 무대의상을 차려입은 단원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농어촌 지역 목회자들이다. 검은 머리와 희끗희끗한 머리가 피아노 건반처럼 조화를 이룬 단원들의 평균 연령은 60세를 훌쩍 넘는다. 하얀 셔츠에 단정하게 맨 붉은색 나비넥타이가 이들의 열정과 관록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었다.
합창단의 대표주자이자 맏형 역할을 하는 김치호(78·남지제일교회) 원로목사는 “합창단 연습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며 “연습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다 보면 합창단원 전부가 에너지를 한껏 받아 사역지로 돌아간다”고 자랑했다.
2009년 한국농어촌선교단체협의회(한국농선회·회장 김웅길 장로)를 주축으로 창단된 전국농어촌목사합창단은 교파를 초월한 농어촌 목회자 52명으로 구성돼 있다. 단원들의 사역지는 제주 광주 청주 안동 보령 전주 함평 등 전국 곳곳을 아우른다. 두 달에 한 번 대전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에서 합창 연습을 한다.
4년차 단원인 최은표(58·하귀교회) 목사는 공연을 위해 제주도에서 날아왔다. 최 목사는 “관객들이 눈을 감고 우리 찬양을 집중해 듣는 모습을 볼 때 희열을 느낀다. 제주도에 있어서 매번 연습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악보를 받아 따로 연습하며 함께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최근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이건영 목사) 스무 번째 영성수련회의 특별공연 순서자로 무대에 올라 ‘주만 바라볼지라’ ‘너는 내 것이라’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등 6곡을 선보이며 관객 1000여명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이날 공연에는 지리산 아랫자락에서 목회하며 독학으로 연습한 트럼펫과 색소폰 실력을 펼쳐 보인 단원도 있었다. 주인공은 이상묵(65·송계교회) 목사. 이 목사는 “시골에서는 방음이 잘 되지 않아 교회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연습해야 할 때도 많지만 주님이 주신 악기로 찬양을 연주하고 감동을 주는 일이 참 행복하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현재 동료 단원인 조한우 오세효 목사와 함께 세 사람의 성을 딴 ‘조오이 밴드’를 만들어 목회지에서 색소폰 앙상블 공연을 재능기부하고 있다.
합창단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는 지휘자 최철(44) 집사는 “사역지도 나이도 다르지만 ‘합창’이라는 주제로 만나 주님께서 질그릇을 빚듯이 하나 되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라며 “열정과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만큼은 그 어떤 합창단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찬양을 향한 열정은 뜨겁지만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대전까지 오가는 비용조차 부담스런 게 현실이다. 합창단원인 김기중 한국농선회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단원들이 사비를 들여 연습실을 찾는다”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분들에겐 개인적으로 여비를 챙겨드려야 할 때도 있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농어촌에서 사역하며 궁핍한 생활을 하지만 합창을 통해 위로 받고 목회를 향한 새로운 의지를 갖게 된다”며 “도시교회가 농어촌교회 목회자를 돕고 합창단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대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평균연령 60을 훌쭉 넘는 전국농어촌목사합창단
입력 2015-08-31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