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한 여체조각으로 유명한 고정수 작가 “곰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선물하다” 9월2일부터 노화랑 개인전

입력 2015-08-31 15:23
느리게 사는 즐거움 속에
밝은 세상
감동과 떨림으로
내사랑 꿀단지
북경에서 온 친구
그동안 돌과 청동 등으로 모성을 떠올리게 하는 풍만한 여체를 조각해온 고정수(68) 조각가가 곰들의 미소에 빠져들었다. 그의 작품 속 곰들은 평화로워 보인다. 웃고 있거나 서로 끌어안고 있다. 혼자 있는 곰도 킥보드를 타며 놀고 있는 등 여유로운 모습이다. 작가가 지난해부터 ‘곰’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을 2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서 선보인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50년간 돌과 쇠, 망치와 정을 친구삼아 불도저 같은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작업한 여인상은 8등신의 미인이 아니라 모성애를 지닌 수더분하고 펑퍼짐한 캐릭터였다.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마네킹 같이 예쁜 외모를 가진 여성이 아니라 외부의 충격에도 굴하지 않고 모성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에너지가 넘치는 건강한 여인상이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이전과 달리 작가의 말대로 예기치 않게 2014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곰’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예술의 목적 하나가 인간의 정신을 치유하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 사유하면서 만들고, 즐기지 못한다면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의인화된 곰 작품을 보면서 관람객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한 글을 쓴 부분을 인용하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조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유희할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바, 인간이 인간일 수 있을 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더 없이 아름다운 것은 유희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예술가로서 무한한 책임과 함께 긍지 또한 크다 하겠다.”

작가는 작업실에 박혀 사는 자신의 처지가 동물원 우리에 갇힌 곰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곰과 자신에게 자유와 행복을 선물하자는 의도로 조각을 했다. “고립된 시공 속에서 침묵하며 아침에서 그 다음 새벽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하게 외로움과 치열한 대립을 하며 갇혀있어야 하는 작업과정은 나를 담금질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가족으로 보이는 반달곰 네 마리가 함께 손을 들어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밝은 세상’, 어미 곰이 새끼 곰을 다리에 올려 비행기 놀이를 하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 속에’, 곰 두 마리가 껴안고 좋아하는 ‘감동과 떨림으로’, 중국 곰 판다를 도자기에 새긴 ‘북경에서 온 친구’ 등 작품들이 하나같이 재미있고 익살스럽다.

작가는 진득하면서도 참을성이 많은 곰 작업을 하면서 휴식과 즐거움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간 해왔던 여체 조각의 볼륨도 살릴 수 있었다고. 그는 전시를 앞둔 31일 “전 세계적으로 전쟁, 질병, 가난에 시달리고 우울한 세상이 아니냐. 의인화된 곰 작품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기를 희망하고 힐링을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02-732-3558).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