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 행사로 본 동북아의 외교지형

입력 2015-08-27 17:38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결정으로 동북아시아의 외교지형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 ‘미국의 최우방국’ 정상이 미국과 세계2강(G2) 대결을 벌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군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모양새 자체가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박 대통령이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유일한 ‘서방국’ 정상이라는 점에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의 ‘중국 경도(傾倒)론’ 논란이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전승절 참석이 불가피했다는 반론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70년째 ‘친북 우방’인 중국이 남한 정상을 자신들의 최첨단 무기를 과시하는 열병식에 초청하는 유례없는 ‘예우’를 갖춘 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불참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의 참석이 우리 정부에겐 ‘위기’이기보다는 되레 ‘기회’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압박 포위망을 완성하려면 중국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라 판단하고 있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세계 전체에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중 밀월’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반응도 의외로 나쁘지가 않다. 미국 국무부는 “(각국 정상의) 이번 행사 참석은 각국 주권사항이다.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논평한 바 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승절 참석자 명단 자체가 한정돼 있어 (박 대통령이) 다소 눈에 띄는 감이 있다”면서도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북한에 새로운 압박 효과를 낼 전망이다. 북한에서는 권력 서열 6위에 불과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참석한다. 국가원수인 박 대통령과 함께 군 대표단까지 파견한 우리 측에 비하면 한참 ‘격’이 떨어진다. 의전 상으로도 박 대통령보다 ‘푸대접’을 받을 게 명약관화하다. 중국에선 벌써부터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이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란 해석이 파다하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김 제1비서에게는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이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으로선 이번 행사의 풍경을 “중국이 남한과 더 가까워지려 한다”고 여길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 달 뒤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의제를 다루게 된다.

한·중 밀월이 재확인된다면 양국의 ‘대일 과거사 공조’도 강화될 게 틀림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국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중국 밀착에 나섰지만, 이번 전승절 불참 결정으로 다시 중·일 관계는 원점으로 회귀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성은 기자,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