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부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 후속 협상에 대한 속도조절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우선 이번 합의의 구속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양측간 서명이 없는 공동보도문 형태인 낮은 단계의 합의인 만큼 북한이 과거처럼 일방 파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직 구체적 결과물도 없는데 벌써부터 ‘장밋빛 전망’만 나올 경우 되레 협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과거에도 우리 쪽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이상 열기’가 북한에만 도움이 됐던 사례가 많았다. 정부는 우선 당면한 이산가족 상봉 협상에 집중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를 파악한 뒤 단계적 현안 협상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는 27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고 추석 전후 이산가족 상봉 추진방안을 논의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5·24 조치와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의제로 오르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대변인은 “이산가족 상봉 추진 방안 및 일정을 당면 과제로 협의했다”며 “정부는 향후 후속조치를 우선순위에 따라 차분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달 시작될 이산가족 상봉 협상에서 북한의 진정성이 드러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무적 준비만 하면 바로 성사가 가능해 양측간 현안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북한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다행이지만 반대의 경우 다른 문제 논의에도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2013년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지만 행사 직전 일방적으로 연기를 발표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해 10월로 넘어갈 경우 북한 노동당 창건일(10월10일)이 큰 변수다.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 남북대화는 난항에 빠지거나, 무산되리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남북관계를 ‘진짜’ 개선하겠다는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돼야만 다음 단계 대화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 스탠스다. 5·24조치 해제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란 얘기다.
남북간 화해 무드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양측 관계가 냉각돼 있고, 각종 현안을 푸는 데에도 까다로운 조건이 많이 붙어있다. 또 연말부터 ‘내년 총선 정국’으로 들어서면 대북정책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어느 때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반기에는 대북 이슈를 논의할 외교 행사가 즐비하다. 북한 문제를 우리 정부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국제 공조도 필수적이다. 정부로선 안으로는 북한을, 밖으로는 관련국을 북한 설득에 나설 수 있도록 견인하는 ‘동시다발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의 ‘신중 모드’는 이런 사정에 기인하는 셈이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시행착오를 수정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론의 ‘조급증’에 떠밀리다간 자칫 공들인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정부내 속도조절론 급부상
입력 2015-08-27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