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열병식 참가국으로 본 국제정치학

입력 2015-08-27 16:24
중국 환구시보는 지난 25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행사의 공식 참가국이 발표된 후 “중국이 초청한 51개국 중에 일본과 필리핀을 제외하고 49개국이 초청에 응했다”고 전했다. 참석률이 96%나 되니 놀라운 일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참석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빼면 내세울 만한 지도자들이 없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본국에서 공식 대표를 파견하지 않고 주중 미국대사관 사절을 보내기로 해 최소한의 ‘성의 표시’만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전승절 당일을 피해 방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일본은 공식 사절도 없이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만 자리를 차지한다. 대다수 서방 국가들은 주중 대사관 사절로 가름할 예정이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 행사에 대해 “평화발전의 길을 변함없이 걷겠다는 중국의 의지와 더불어 세계평화 수호 및 국가의 주권과 안보 및 발전 이익을 지키고자 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서방국들 사이에서는 이번 행사가 ‘중국의 군사적 패권 과시용’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들러리로 나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확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미 동맹’이라는 압박을 뚫고 참석하는 박 대통령에 대해 중국으로서는 상당한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베이징대 량윈샹 교수는 홍콩 명보에 “미국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강철대오’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하이 퉁지대 추이즈잉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긴 하지만 군사동맹에 국한된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불참하지만 대신 측근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보내기로 했다. 김정은의 불참은 냉각된 북중 관계를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최 비서는 2013년 5월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아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신지도부와 잇달아 회동한 바 있다. 이번 방중 기간 김정은의 친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달된다면 의외로 양국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당초 전승절 행사일을 피해 방중할 것으로 알려졌던 아베 총리의 방중 무산은 앞으로 중일 관계에 좋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각 부처간 교류로 양국 관계를 점차적으로 개선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정상회담을 통한 관계 급진전은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중국에서는 일본이 주중 대사관에서조차 공식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에 상당한 불쾌감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