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칸반도로 밀려든 난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과 잠잘 곳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필요한 게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스마트폰 충전소’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최근 급증하고 있는 유럽 난민들 사이에서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었다고 전했다. 이동경로를 찾거나 지인들과 연락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라는 설명이다.
시리아 데이르알조르에서 음악교사를 하던 오사마 알자셈(32)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국가에 들어설 때마다 심카드를 사서 인터넷을 켜고 지도를 다운받아서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난민이 몰리고 있는 세르비아 벨그라데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알자셈은 스마트폰에서 다음 목적지를 찾고 있었다. 알자셈은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목적지에 절대 도착 못했을 것”이라면서 “배터리가 다 닳아 가면 불안해진다”고 덧붙였다.
현대 난민들에게 스마트폰 지도와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앱, 소셜미디어 등은 무척 중요한 도구다. 난민들은 이동경로와 수단을 비롯해 체포현황, 국경병력의 이동까지 살필 수 있게 됐다. 행선지의 숙소와 물가, 그리고 가족 및 지인들과의 연락도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진다.
행선지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하는 건 스마트폰을 꺼내 지인들에게 도착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이 같은 변화는 세르비아 중산층이 전쟁에 의해 난민 신세가 되면서 급격히 벌어졌다고 NYT는 전했다. 비단 이들 뿐 아니라 아프리카나 중동,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난민들에게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SNS 상에서 이동방법을 찾기도 한다. 페이스북 상의 ‘유럽으로 이동’ 그룹에는 6057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시리아 난민들은 2만3954명 회원을 보유한 ‘EU로 숨어들기’나 4만9304명 회원이 가입한 ‘유럽으로 이민가는 방법’ 그룹에서 아랍어로 된 정보를 구한다.
위 페이스북 그룹에서는 관리자의 초대가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난민들은 여기서 이동 중에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난민들이 SNS를 통해 여정을 공유하면서 이동이 쉬워졌다. 덕분에 이전까지 유럽으로 난민들을 실어 나르던 업자들은 고객이 줄어 애를 먹고 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는 바닷길 정도만 제외하면 난민들은 업자들 없이 SNS를 통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알자셈은 여정을 떠나면서 스마트폰을 하나 더 구입했다고 밝혔다. 정부군 검문소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검문소를 지날 때면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프로필을 통해 어느 곳 출신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알자셈은 “군인들은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주지 않으면 때리고 스마트폰을 뺏는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은 난민들이 구호단체와 접촉하는 방법도 바꾸고 있다. UN난민기구(UNHCR)는 요르단에 있는 난민들에게 심카드 3만3000개를 나눠주는 한편 스마트폰 충전용도로도 쓸 수 있는 태양전지 랜턴 8만5704개를 나눠줬다. 무엇이 난민들에게 정말 필요한지 고민한 결과다.
파벨 크르즈시에크 국제적십자사 시리아 다마스커스 지부 대변인은 스마트폰 덕분에 난민들이 전처럼 수동적으로 정보를 얻지 않고 구호단체들과 정보를 직접 교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소셜네트워크의 시대를 지나 이제 소셜메세징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급수관이 파괴됐을 당시 적십자사는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포스트는 13만3187번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중 1만4683명이 게시물을 클릭하고 4859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평소 이 단체가 올린 다른 게시물의 10배에 달하는 양이다. 크르즈시에크 대변인은 실시간으로 시리아 내 폭격지역을 알려주는 페이지도 인기라고 알려왔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온 모하메드 살모니(21)는 이 페이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례다. 아프간 님루즈에서 이란 자헤단으로 향하던 40시간 동안 살모니는 이 페이지를 보며 폭격지대를 피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선 스마트폰이 추억을 간직하는 도구로도 쓰인다. 열 살, 아홉 살 먹은 아들 둘을 데리고 다마스커스에서 건너온 샤다드 알하산(39)이 그런 경우다. “폭탄 때문에 아내를 잃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아들들 뿐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알하산의 스마트폰에는 그간 찍은 사진들이 담겨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그에게 스마트폰은 세상에 그가 살아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21세기 난민들의 필수품? 스마트폰!
입력 2015-08-26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