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앵커 베이비(anchor baby·원정출산) 발언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자신의 부인이 멕시코 출신이고 또 부시 전 주지사도 남미에서 공부해 히스패틱 배경이 있는 그는 미국 내 히스패닉을 옹호하려고 아시아계에게 화살을 돌리다가 그 화살이 부메랑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발언으로 미 대선에서 이민자 문제가 재쟁점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시 후보는 24일 텍사스주의 멕시코 국경에서 기자들을 만나 “텍사스주와 멕시코 국경에서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에게 미국 국적을 주는 제도를 아시아인들이 악용하고 있다”며 “앵커 베이비는 중남미인들보다 출생 국적이라는 고귀한 개념을 조직적으로 악용하는 아시아인들이 더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앵커 베이비는 미등록 이주민이 미국에서 출산해 미국 국적을 얻은 아기를 뜻한다. 바다에 닻(anchor)을 내리듯 부모가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정착을 돕는다는 가치 평가를 담은 용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중남미에서 건너온 미등록 이민자 계층을 전체적으로 비방하는 말로 사용돼 왔다.
이에 아시아계 미국인이 밀집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마이크 혼다(민주) 연방 하원의원은 25일(현지시간) 논평을 내고 “부시 후보의 발언은 모든 이민자들에 대한 모욕이며 우리의 문화에서 설 땅이 없는 주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혼다 의원은 이어 “미국은 다양한 문화와 배경 위에 건국됐다”며 “그 같은 편협한 발언은 미국 민주주의 근본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혼다 의원은 “미국 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는 누구도 그 같은 권한이 약화되도록 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DC에 소재한 전미아시아태평양계미국인협의회(NAPALC)는 논평에서 “부시 후보가 경멸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며 “1882년 중국인의 미국 시민권 획득과 이민을 20년간 금지했던 중국인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에서부터 중국계 시민권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주는 대법원 판례(United States v. Wong Kim Ark)를 뒤집으려는 입법적 움직임, 그리고 이번 앵커 베이비 발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들은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계 미국인 조직인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권익옹호협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부시 후보의 잘못된 언사로 수백만의 합법적인 미국인들이 반(反) 이민적이고 외국인을 증오하는 움직임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백인들보다 못하다는 믿음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대선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도 이 같은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젭의 발언으로 아시아인들이 매우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면서 “자신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단어 앵커 베이비라는 말을 썼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부시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아시아인들을 비난했다”고 비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부시 앵커 베이비 발언 부메랑 되나?…미 대선 이민자 문제 쟁점화
입력 2015-08-26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