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합의문에서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에 대한 책임을 우회적으로 피해나갔다. 우리 측이 요구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지뢰 폭발은 남한의 날조극”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피했다.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무박 4일 43시간 동안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은 25일 00시 55분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남북은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며 2항에서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진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다”고 알렸다.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이후 북한은 선전 매체를 통해 줄곧 혐의를 부인해왔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이 요구한 ‘책임있는 사과’를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입장을 뒤집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한 측은 합의문에서 사과 대신 유감을 표명하며 자가당착을 피했다. 또, 북한은 합의문 3항에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했다”고 합의하며 사실상 확성기 방송 중단이라는 대내적 명분을 얻었다. 남한으로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회담 성사 등을 관철시켰다.
남북은 합의문 타결 직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한 황병서 조선인민국 총정치국장이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5일 00시 55분쯤까지 무박 4일 43시간에 이르는 협상 강행군을 거쳤다.
북한은 ‘결렬’을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던 과거 회담과는 달리 이번 회담만큼은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두 차례나 고위급 회담을 한 만큼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민족이 총구를 겨누는 비극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2015년 8월22일부터 24일까지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쌍방은 접촉에서 최근 남북 사이에 고조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진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함.
3.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
4. 북측은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했다.
5. 남과 북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 초에 가지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10일
오전 9시 = 우리 군, DMZ 폭발 사고는 북한이 살상 의도로 매설한 목함지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 발표.
오후 5시 = 우리 군, DMZ 지뢰도발에 대한 보복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14일
오후 4시 =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담화 통해 지뢰 매설 전면 부인. 지뢰 폭발을 남한의 '자작극'으로 주장.
◇20일
오후 3시53분 = 북한, DMZ 남방한계선 이남인 경기도 연천군 야산에 14.5㎜ 고사포 1발 발사.
오후 4시12분 = 북한, DMZ 군사분계선(MDL) 남쪽에 76.2㎜ 평곡사포 3발 발사.
오후 4시50분 = 북한, 판문점 채널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명의 통지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발송. 관계개선 노력 의사 표명.
오후 4시56분 = 북한군 총참모부, 서해 군 통신선으로 통지문 발송. "48시간 내 확성기 철거 않으면 군사행동" 통첩 제시.
오후 5시4분 = 국군, MDL 북쪽 500m 지점에 155㎜ 자주포 29발로 대응 사격.
오후 6시 = 박근혜 대통령,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주재.
밤(시간 미상)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 소집. 21일 오후 5시(남한시간 오후 5시30분)부터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 선포.
◇21일
21일 중 = 한미 군 당국, 대북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 상향 조정. 북한의 포격 도발 에 대응해 연합작전체제 사실상 가동.
오전 0시25분 =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긴급보도 통해 포격도발 사실 부인.
오전 10시40분 = 우리측, 북한에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 통지문 발송 시도. 북한, 명의를 문제삼아 접수 거부.
오후 = 박근혜 대통령, 경기도 용인 제3 야전군 사령부 전격 방문.
오후 4시 = 북한, 김양건 비서 명의 통지문으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의 접촉 제의.
오후 6시 = 우리측,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의 접촉을 제의하는 수정 통지문 북측에 전달.
오후 8시 = 한민구 국방부 장관, 대국민 담화 발표.
◇22일
오전 9시35분 =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가 접촉에 나올 테니 남측에서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장관을 대표로 하라는 수정 제의 전달.
오전 11시25분 = 우리측, 북측 수정제의에 동의하는 통지문 발송.
낮 12시45분 = 북측 동의로 남북 고위급 접촉 성사.
오후 3시 = 청와대, 오후 6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접촉 전격합의 발표.
오후 6시30분 = 김관진 실장·홍용표 장관, 황병서 총정치국장·김양건 비서 간 '2+2' 남북 고위급 접촉 개시.
◇23일
오전 4시15분 = 남북 대표단, 10시간에 가까운 마라톤 협상 끝 1차 접촉 정회.
오후 3시30분 = 남북 대표단, 고위급 접촉 재개.
◇25일
오전 0시55분 = 남북 고위급 2차 접촉, 극적 타결과 함께 33시간여만에 종료.
오전 2시께(예정) =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공동발표문 발표.
김동우 천금주 기자 love@kmib.co.kr
북한, 합의문서 사과 대신 유감 표명… 자가당착은 피했다
입력 2015-08-25 03:02 수정 2015-08-25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