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색채치료(컬러테라피) 작품 컬렉션이 붐을 이루고 있다. 미술품을 웰빙 차원에서 구입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미술 전시도 색의 치유효과를 바탕에 둔 마켓팅이 활발하다. 미술의 생활화라고나 할까.
일본 도쿄 닌자 거린 닛치갤러리가 김가범 작가를 초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일본의 미술잡지와 한국미술전문가가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보고 전시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빛과 색을 이용한 치유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등의 고대문명에서 시작되었다. 색채치유란 색채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치유의 과학이며 대체의학의 한 분야이다.
색에는 심리적 효과가 있으며 감정과 신체의 밸런스를 유도하여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17세기 뉴턴에 의해 프리즘을 이용한 광 스펙트럼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괴테에 이르러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빛의 생리학적 측면이 밝혀지게 되었다. 1878년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 애드윈 배빗(Edwin D Babbit)’ 박사는 ‘빛과 색의 원리’ 저서를 통해 색 치유 이론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가범 작가의 블루 작품은 신뢰와 믿음, 조화를 상징한다. 성실, 침착, 냉정, 안정, 고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가져다준다. 푸른색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장시간의 집중력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두뇌 노동이나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장소에 또한 좋은 영향을 준다. 작가는 원색적인 색채추상으로 ‘힐링 그림’을 구현하고 있다.
작가는 한국화단에서 동양적 붓의 맛이 느껴지는 색채추상을 이끌고 있다. 순색의 유채물감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시각적 이미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순색으로 표현했다면, 그는 화면 전체를 원색적인 이미지로 붓질하면서 물감의 아름다움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순색의 의미를 확장한다.
그의 작업은 유채색의 아름다움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일 보다는 거기에 숨어 있는 신비적인 요소를 끄집어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사용하는 색채추상은 평면적인 구조를 지닌 색면 중심의 추상이 아니다. 색채이미지와 더불어 두텁고 무겁게 느껴지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맑으면서도 명료한 색채의 나무와 산의 이미지는 사유하는 문인화의 요소를 엿보게 한다.
무거운 침묵의 공간에 갇혀 있다가 한줄기 빛에 의해 깨어나는 세상은 비로소 생명의 공간이 된다. 오팔,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의 보석에서 볼수 있는 원색적인 색채 이미지가 어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마법 같은 일이다. 색채추상이면서도 빛을 개입시킴으로써 어렴풋한 실우엣 형상은 구상과 추상을 넘어 무한공간을 제시한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일본이 호출한 빛과 색채의 블루작가 김가범 도쿄 닛치갤러리서 25일부터 9월3일까지 초대전
입력 2015-08-24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