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140년 전통의 세인트 로치마켓은 오랫동안 뉴올리언스를 상징해온 건물이다. 시장이면서 서민적인 음식을 파는 곳으로 흑인들이 자주 찾았다. 그러나 10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침수됐고 몇 년간 폐허로 방치됐다. 그러다 몇 년 전에 다시 복원됐고 지금은 첨단기술 기업 종사자들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이 레스토랑 창문에 ‘여피=나쁘다’라는 낙서가 쓰여졌다. 여피는 도시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일컫는 말로, 카트리나 피해 이후 외부에서 유입된 잘 사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지칭했으며,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가난한 흑인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29일(현지시간)은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휩쓸고 간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로치마켓의 사연이 지난 10년간의 뉴올리언스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카트리나 사태 이후 외부인들이 많이 밀려들었고 시 전체적으로는 잘 살게 됐으나 토박이 흑인들은 점점 더 가난해져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인근 호수의 제방이 붕괴되면서 80%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은 이 도시의 대부분이 침수됐다. 1833명이 익사했고 가옥 10만채가 파손됐다. 재산피해도 1000억 달러(약 120조원)에 달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0년간의 복구작업을 통해 지금은 피해 지역의 80%가 복구됐다. 시 주변에는 214㎞ 길이의 튼튼한 홍수방지벽이 설치됐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배수시설도 들어섰다. 안전이 확보되면서 관광이 활성화됐고, 레스토랑에서는 재즈 음악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경제도 호황이다. 외부의 젊은이들이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진 뉴올리언스를 찾아오면서 창업이 크게 활성화됐다. 카트리나 사태 당시 전 미국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몰렸는데, 그때 뉴올리언스의 매력에 빠졌던 이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창업의 전진기지로 뉴올리언스를 택하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2011~2013년 미 도시들의 평균 창업비율보다 67% 더 창업이 이뤄졌다. 미국 포브스지는 최근 “뉴올리언스는 인재를 빨아들이는 자석”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49만명이던 인구가 홍수 피해 1년 만에 23만명으로 줄었으나 지금은 39만명으로 회복되는 등 인구유입도 가파르다.
하지만 좋은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시 남부의 나인워드 지역은 아직도 복원되지 못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은 22일 “버려진 집들이 마약굴로 변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NTY에 따르면 고향을 떠났던 많은 흑인들이 비싸진 집값 때문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재난 전에는 흑인 비율(67%)이 높아 ‘초콜릿 시티’로 불렸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59%로 줄었다.
무엇보다 흑인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현지 시민단체인 국립도시리그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의 평균수입이 18% 차이가 나며, 흑인 어린이 빈곤 비율도 재난 이전의 44%에서 51%로 늘었다.
문화 전통이 변질되고 있다는 불만도 많다. 카니발 축제에 자주 참여했다는 흑인 여성인 다이앤 호노레는 NYT에 “뉴올리언스의 문화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면서 “우리 문화는 여전히 익사상태”라고 말했다. 뉴올리언스가 온전히 복원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손병호 조효석 기자 bhson@kmib.co.kr
카트리나가 강타한 뉴올리언스 10년 후 아직은 반쪽짜리 복원
입력 2015-08-24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