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접촉이 무박 3일 ‘끝장 협상’ 양상으로 진행됐다. 남북 회담에서 밤샘 협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피 말리는 마라톤협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양측 모두 협상의지가 강하지만, 의미 있는 교집합을 찾아내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북 대표단은 24일에도 전날 오후 3시30분부터 시작된 2차 접촉을 이어갔다. 22일 첫 접촉(9시간45분)까지 포함하면 무박 3일간 36시간 넘는 전례 없는 끝장협상을 벌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회담에서 밤샘협상은 늘 있어왔던 것이지만, 이번처럼 이틀 연속 밤을 새워가며 논의에 임한 사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이 접촉의 빌미가 됐지만 양측이 대화테이블 의제로 포괄적 주제인 ‘남북관계’까지 올려놨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군사적 긴장 관련 의제 외에도 이산가족 상봉, 5·24조치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의제 하나하나가 향후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무게감이 있어 진척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서로가 ‘밀리면 끝’이라는 사생결단의 담판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양측은 사안 마다 각자가 제시한 초안을 놓고 문안을 조율한 뒤 이를 서울과 평양에 알리고 훈령을 받아 다시 조율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접촉은 합의된 의제 없이 급박하게 성사된 탓에 양측은 의제 설정에서부터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정회가 거듭됐고, 남북 간에 얼굴을 붉히며 거센 설전도 오갔다고 한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회담장이 아닌 ‘평화의 집’ 내 별도 공간에서 ‘일대일 수석대표 접촉’도 진행했다. 우리 정부가 핫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알 수 있는 회담장을 벗어나, 비공개로 심도 있는 담판을 짓기 위한 것이다.
청와대 역시 철야 비상대기 상황을 유지하며 협상진행 과정을 함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관련부처와 수석실 등을 통해 북측 제안내용 등 진행 상황과 북한군의 동향 등을 수시로 보고 받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은 고위급 접촉이 시작된 22일부터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핫라인을 통해 전달되는 회담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책을 숙의하고 북측의 제안을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안보실과 외교수석실의 참모들도 꼬박 밤을 샜다. 사무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는 참모들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 직원들은 접촉 결과를 기다리다 새벽에 잠시 귀가한 뒤 서둘러 청와대로 다시 출근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3일 새벽 해외방문 일정을 앞당겨 급거 귀국한 데 이어 조태용 외교부1차관도 25일 예정된 파키스탄 방문을 연기했다. 새누리당도 북한의 포격도발이후 5일째 비상체제를 이어갔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측 역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지시받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북측의 경우 이번 협상이 체제 안정 문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대표단의 재량권이 크지는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이례적인 무박 3일 끝장협상
입력 2015-08-24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