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대피소 생활 화천 지역경제는 파탄 지경

입력 2015-08-24 16:14

24일 낮 12시쯤 접경지역인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산양리 시가지 일원이 텅 비어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지난 22일부터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대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6·25전쟁 때 말도 못할 만큼 힘들었어요. 젊은 세대들은 절대로 그 고통을 겪으면 안됩니다.”

24일 오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 토고미마을 체험관 대피소에서는 주민 10명이 모여 앉아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전해 들으며 남북 고위급 회담 결과를 예의주시했다.

대피소 한쪽에선 백발이 성성한 80대 할머니 2명이 나란히 앉아 상기된 표정으로 10대 시절 겪었던 피란 얘기를 주고받았다.

고계순(84) 할머니는 “앞에는 아기를 안고, 뒤에는 봇짐을 지고 피난을 가는데 그땐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면서 “살아생전 전쟁 얘기가 더 이상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까지 남북이 긴장상황에 놓일 줄은 몰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배봉선(84) 할머니는 “지금도 눈앞에는 60여년전 끔찍하기만 했던 전쟁 상황이 또렷이 기억난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대피소 생활이 사흘째라는 두 할머니는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했다.

배 할머니는 “군용 헬기 조종사인 아들(53)이 지금 양구에서 대기하고 있어 걱정이 많이 되지만 아들이 오히려 부모 걱정을 많이 한다”면서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지 어쩌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 할머니는 “남북 간의 긴장이 잘 풀려 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면서 “우리는 이제 늙어서 죽어도 괜찮지만 젊은 세대들은 절대 전쟁을 겪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비슷한 시간 상서면에 위치한 산양초교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화천군이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해 이날 하루 휴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유치원생 10명과 초등학생 25명 등 모두 35명이 재학 중이다. 다만 교사들은 정상적으로 출근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낮 12시쯤 산양리 시가지 일원은 점심식사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산하기만 했다. 거리에는 도로를 오가는 군용차량과 승용차들만 보일뿐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들이 문을 닫아 거리가 더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음식점 주인 유현주(54·여)씨는 “지난 금요일에 문을 닫은 후 사흘 만에 문을 열었지만 손님은 거의 없다”면서 “다른 식당 주인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부터 사흘째 대피생활과 귀가를 반복해 온 화천지역 주민들은 조속히 사태가 해결되기만을 바랬다. 이곳에 사는 100여명의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서 낮에는 생업에 종사한 후 오후 5시쯤 대피소로 집결해 오는 생활을 이어 오고 있다.

주민 길정국(28)씨는 “저녁 5시만 넘으면 주민들이 대피하기 때문에 거리에 사람들도 없고, 거리 자체에 빛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군 간부들과 장병들의 외출 외박까지 제한되다 보니 지역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주민 대피령이 해제되거나 귀가 조치된 철원·고성·양구·인제 등 나머지 접경지역 지자체도 남북 고위급 회담의 결과 등을 지켜보면서 유사시 주민 대피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도내 접경지역 안보관광지 운영 중단은 지난 20일부터 닷새째 계속되고 있다. 화천=사진·글 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화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