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쓸고 지나간 카트리나 10주년, 폐허 위에 남은 사람들

입력 2015-08-23 20:17 수정 2015-08-23 20:23
뉴올리언즈 풍경. 뉴스위크 홈페이지 캡처

“걸을 때마다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어요. 마치 콘플레이크 위를 걷는 것 같았다고요. 사방에 금이 가 있었고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세븐스워드에 사는 안젤라 초크는 10년 전 태풍 카트리나가 쓸고 지나간 직후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국가 방제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당시 뉴올리언스 가정의 80% 가량이 안젤라의 집처럼 물에 잠겼다. 안젤라는 태풍이 지나간 몇 주 뒤 돌아왔을 때 갈색 폐허만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안젤라가 집을 다시 짓는 데는 4년이 걸렸다. 루이지애나주 ‘로드 홈’ 프로그램에서 자금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돈을 챙긴 채 공사를 마치지 않은 건설업자와의 갈등이 여태 해결되지 않았다. 주민 중에는 안젤라와 같은 사례가 많다.

안젤라는 이 자리에서 3대째 살고 있다. 안젤라의 할아버지는 1942년 카드 게임에서 이겨 이 집을 마련했다. 안젤라는 “이곳에 살 운명이기 때문에 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사람들은 뉴올리언스 중심 시가지가 멀쩡하기 때문에 도시가 전부 회복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를 덮친 지 10년이 지났다. 2005년 당시 카트리나는 최고 시속 280km의 강도로 휘몰아쳐 8월 23일부터 31일까지 1833명의 사망자와 2만명 이상의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80% 이상이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뉴올리언스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 국영 라디오방송 NPR은 22일(현지시간) 카트리나 사태 10주년을 맞아 안젤라의 이야기를 전했다. NPR은 뉴올리언스 중심 시가지와 백인 거주지 등은 회복됐지만 기존에 살던 저소득층 및 흑인 주민은 여전히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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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시가지는 외부인들이 많이 오가는 프랑스인 거주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는 투자와 재건축이 한창이다. 하지만 안젤라가 살고 있는 이웃의 풍경은 이와 대조적으로 음울하다. 루이지애나주 당국은 뉴올리언스에 현재 3만개 사유지가 황폐화 된 채 남아있다고 밝힌 상태다. 안젤라는 최근 몇 주간 주변 이웃 중 3채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우린 이제 거기 안 사니까 걱정 안 해.’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나 봐요. 카트리나 사태는 과거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다시 떠올리려 하질 않죠.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여기 살고 있거든요. 그런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쳐요.”

재건사업에 참여한 프레드 존슨 뉴올리언스이웃개발재단 CEO는 “(피해 주민들이) 가진 돈이 적을수록 복구를 마쳤을 때 극심한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며 “사람들은 가난이 닥쳐와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카트리나는 그 모든 걸 넘어서 버렸다”고 설명했다.

살던 곳으로 돌아오려는 주민들은 10년 뒤인 지금도 여전히 보험회사나 로드 홈 프로그램 측과 보상금을 두고 다투고 있다. 나머지 주민들은 귀환을 포기하고 휴스턴이나 애틀란타 등으로 대거 이주해버렸다.

뉴올리언스 시 당국은 지금까지 1만3000~1만5000가구를 수리하거나 철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이저패밀리재단에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43%의 주민들이 뉴올리언스가 여전히 카트리나 사태에서 회복되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주민들의 복구 체감도는 인종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같은 설문에서 흑인 주민 중 30% 가량이 사는 곳 주변의 폐허 건물로 인해 큰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반면 백인 주민들은 10%만 그렇다고 답했다. 전체 주민 중 백인과 부유층에 복구가 집중됐다고 답한 이들도 각각 43%와 42%에 달했다.

버려진 집들은 마약굴로 변해가고 있다.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이 악영향을 미칠까봐 불안에 떨고 있다. 뉴올리언스에 거주하는 미첼 왓킨스는 “(버려진 집에 가면) 마약하면서 쓴 주사바늘 같은 것들이 나온다”고 증언했다. 카이저재단의 설문조사에서 흑인들은 37%만이 뉴올리언스가 아이들을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답했다. 백인들이 답한 70%와 대조적이다.

지표상으로 뉴올리언스는 10년 전 재난으로부터 완연하게 회복했다. 미국 주간 뉴스위크는 22일 첨단기술과 영화산업 등이 새로 번성하기 시작했고 관광업도 호조세라고 보도했다. 미국 전역에서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이 쏟아져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켰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NPR은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 정작 살던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