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은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살얼음판’ 상황에서 진행됐다. 양측은 엄중한 국면임에도 회동 전 미소를 띠며 악수를 나누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타계하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접촉 결과가 향후 남북 관계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만큼 얼굴에선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협상 도중 양측은 서울과 평양에 각각 보고하고 지시를 받느라 수차례 정회를 반복했다. 접촉은 이틀에 걸쳐 손에 땀을 쥐는 협상을 이어갔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3일 오후 3시30분쯤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로비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대남담당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대표단을 직접 마중했다. 북측 대표단이 당초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각보다 30분 늦게 도착해 접촉이 지연됐다. 전날 오후 6시30분부터 9시간 45분간의 마라톤협상을 벌인 끝에 정회된 지 11시간여 만이다.
남북 대표단은 회동장으로 이동해 전날 회담에서 서로 제기한 입장과 제안에 대한 접점 찾기에 몰입했다. 회담장에서는 김 안보실장이 황 총정치국장을, 홍 장관은 김 비서를 각각 마주해 앉았다. 회담장 안쪽 자리에 북측 대표단이 자리했다.
전날에 이어 둘째 날에도 양측의 접촉 시작은 훈훈했다. 우리 측 대표단은 전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북측 대표단을 맞이했다. 황 총정치국장은 김 안보실장, 홍 장관과 악수를 나누며 수초 간 인사말을 건넸고 홍 장관도 “반갑다”며 화답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양측은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한 차례 접촉을 통해 서로 안면을 익힌 상태였다. 당시 김 안보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은 인천 시내의 한 식당에서 오찬 회담을 가졌고, 폐막식 참석에 이어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 면담과정에선 서로 귀엣말을 나눌 정도로 친근감을 보였다.
그러나 비공개협상은 긴박했다. 남북은 협상 중간 내용을 최고 지도부에 전달하고 훈령을 받아가며 대화를 진행했다.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은 회동 도중 수석대표 자격으로 ‘일대 일’ 접촉도 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양측 대표단은 회동이 연이어 진행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해 야식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측은 마라톤협상에도 불구하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앞서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새벽 긴급브리핑을 갖고 “오후 3시부터 다시 접촉을 재개하기로 했다. 상호 입장 차이에 대해 계속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조율’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일정 부분 협상이 진척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남북 고위급 접촉 상황을 지켜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머무르며 관련사항들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 등 외교안보라인도 진행과정에 대응하기 위해 철야 근무를 했다. 새벽 정회 결정 후 귀가했던 일부 직원도 오전 청와대로 복귀해 북측 제안을 분석하고 협상 전략을 논의했다. 오전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소집됐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1박2일 계속된 남북 고위급 마라톤협상
입력 2015-08-23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