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행 고속열차 안에서 AK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를 현역 미군 2명 등 승객 3명이 맨손으로 제압했다. 승객 554명이 탄 열차에서 자칫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 했으나, 이들의 기지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들에게 찬사를 보냈고, 엘리제 궁으로 초청했다. 프랑스 일부 시민들은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이들에게 수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하필이면 미군 승객들과 맞닥뜨린 무장괴한=사건은 21일 오후 5시45분쯤(현지시간) 발생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고속열차가 유서 깊은 아라스를 지날 무렵이었다. 파리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한 프랑스 승객이 화장실을 갔다가 무장괴한과 맞닥뜨렸다. 괴한은 가슴에 AK 소총을 매달고 있었고, 독일제 반자동 권총과 탄창 9통을 지니고 있었다. 200명은 살상하기에 충분한 화력이었다. 순간 이 승객은 괴한을 덮쳤고 둘은 뒤엉켰다. 총알이 여러 발 발사되고 유리창이 깨졌다. 승객들은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그러나 이후 무장괴한이 옆 객차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마침 휴가를 맞아 유럽을 여행 중이던 현역 미군 2명 등 승객 3명이 맨 손으로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특공무술로 단련된 미 공군 일병 스펜서 스톤(23)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아프가니스탄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오레곤 주 방위군 소속 알렉 스칼라토스(22)와 이들의 친구 앤서니 새들러(23)도 가세했다. 괴한도 지지 않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휘둘렀다. 스톤 일병은 목과 손가락 등에 상처를 입었지만 두 친구의 도움을 받아 괴한으로부터 빼앗은 소총 개머리로 그의 머리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스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하루 만인 22일 퇴원했다. 프랑스는 테러를 미연에 막은 이들을 영웅으로 칭송했다. 영국인 60대 승객 크리스 노먼도 괴한을 붙드는 데 힘을 보탰다. 괴한에게 처음 돌진한 프랑스 승객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범인은 시리아서 IS 훈련 받은 듯=괴한은 모로코 출신 아유브 엘 카자니(25)로 밝혀졌다. 그는 극단적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여행을 떠났다가 불과 석 달 전에 유럽으로 돌아와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이 전했다. 카자니는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터키를 거쳐 시리아를 여행했다. 이 기간에 IS로부터 군사훈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카자니는 지난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테러가 일어난 다음날 벨기에 동부 베르비에에서 테러를 시도하다가 사살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IS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혀 유럽 각국의 정보 당국이 주시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직 이 괴한의 범행시도 동기와 배후는 드러나지 않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고속열차안에서 무장괴한을 맨몸으로 제압한 승객들
입력 2015-08-23 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