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선포한 준전시상태는?

입력 2015-08-21 16:49
북한이 전선일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가운데 21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미군들이 이동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북한은 준전시 상태 선포를 단순한 군사적 대응 수단으로만 활용하지 않았다. 정권유지의 핵심인 군부를 독려하고 주민들을 결집시키려는 전략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강대국과의 협상 등 외교적 수단으로도 폭넓게 사용했다.

이번에도 북한은 군 최고 사령관 명령으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도 대상을 전군이 아닌 전방지역으로 국한했다. 최전선에서는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면서도 주변 강대국의 심기는 자극하지 않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준전시 상태가 선포되면 북한사회는 전시체계로 전환하며 준군사조직은 모두 진지에서 24시간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북한이 이를 선포한 것은 대략 7차례로 파악된다. 가장 최근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 직후였다. 2006년 7월 중·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 시험발사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대북 결의문을 채택했을 때도 준전시 상태가 선포됐다.

1968년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Pueblo) 호를 공해 상에서 납치했을 때 역시 준전시상태가 선포됐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탑승 미 해군 장병들을 인질로 잡고 미국과의 첫 양자협상을 성사시켰다. 미국은 끝내 북한 요구를 들어주고 납치된 병력을 모두 인계받았다.

1983년과 1993년에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팀 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불만으로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다. 1983년 준전시 상태 당시에는 사격훈련을 위해 북한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에서 미그 19기를 이륙한 이웅평 대위가 그대로 남한에 귀순했다. 1993년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북한은 나흘 뒤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외에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76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83년)에도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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