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전대통령 사법살인 기억한다” 野 “정치 검찰과 싸우겠다”

입력 2015-08-20 20:14

새정치민주연합은 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해 대법원이 실형을 확정하자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며 강력 반발했다.

일부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살인을 당한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며 이번 유죄판결을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연결시키며 부당한 탄압임을 부각시켰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초동발(發) 태풍'에 당이 초토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유죄가 확정된 한 전 총리 외에도 현재 재판 중이거나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당 소속 의원이 무려 11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대법원 판결 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공안탄압저지 대책위원회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회의에는 한 전 총리도 참석, 단호한 목소리와 차분한 표정으로 이번 판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한 전 총리는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 없다.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라고 항변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시작된 정치보복이 한명숙에서 끝나길 빈다"며 이번 판결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회의에 참석한 30여명의 의원들은 분노와 침통함 속에 한 전 총리를 위로·격려했다.

문 대표는 "우리의 무력함이 참담하다"는 말을 하다 울먹이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한때 한 전 총리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이 원내대표는 "한 전 총리가 진실이 아닌 물음에 분노하는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한 전 총리의 결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두 번 구속됐다. 그 딸이 정권을 잡은 이 정권에 다시 구속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살인을 당한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한 전 총리와 포옹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 시인인 도종환 의원은 영국 문학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시 '만일'을 낭송하며 한 전 총리를 위로했다. 회의장에서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문 대표는 회의를 마친 뒤 한 전 총리를 옆에서 다독이듯 국회 앞 계단까지 배웅했고, 한 전 총리가 차에 타기 전 미소를 지은 얼굴로 포옹을 하며 인사했다.

이날 대책회의에서 새정치연합은 오는 21일 긴급 의총을 열어 이번 판결 및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법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당 지도부는 판결이 난 직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문 대표는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며 사법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 원내대표는 "정치검찰과 싸우겠다. 더 심각한 것은 법원의 동향"이라며 검찰과 법원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날 서초동 대법원 재판정에서는 당 지도부를 비롯해 20여명의 이해찬 김태년 홍영표 의원 등 소속 의원 20여명이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서초동발 태풍'에 잔뜩 긴장하는 표정도 역력했다.

한 전 총리에 이어 당 중진인 박지원 의원이 저축은행 금품수수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고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이 입법로비를 받은 의혹으로 재판중이다.

또 이종걸 원내대표와 강기정 문병호 김현 의원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고, 김현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도 연루된 혐의로 재판중이다.

문희상 의원은 처남 취업청탁 혐의로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으며 당대표를 지낸 김한길 의원은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해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중이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당 소속 의원들과 관련된 의혹을 '공안탄압'으로 규정해 강력 대응하다가 자칫 '비리 감싸기' 또는 '반(反)혁신'이라는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어 대응 수위 조절에 고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