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태어난 지 19개월 된 딸을 욕실에서 씻기고 있었다. 오전 시간이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아기가 힘들어하는 듯해 씻겨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의식을 잃었다. 눈을 감은 딸의 몸을 흔들고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두려움에 엄마는 어쩔 줄 몰랐다. 아기는 눈이 돌아가고 호흡까지 멈췄다. 엄마는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창 밖으로 “살려달라”고 소리만 질러댔다.
비명을 들은 이웃 주민들은 위급한 상황임을 짐작하고 여기저기서 112와 119에 신고를 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20분, 서울 종로경찰서 등에는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가 잇따라 들어왔다. 순찰차를 타고 인근을 지나던 사직파출소 이재구 경사는 지령실의 무전을 듣고 사직터널 인근의 한 주택으로 향했다.
2분여 만에 현장에 도착한 이 경사는 주민 10여명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주민들은 이 경사를 보자마자 손짓을 하며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보라고 했다. 계단을 박차고 오른 이 경사의 눈에 처음 띈 것은 한 남성이 2살 남짓 어린 여자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이었다. 엄마의 비명을 듣고 인근에 사는 주민이 뛰어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사는 주민에게서 여자아이를 넘겨받아 평소 교육받은 대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이 경사와 함께 출동한 황주현 경위는 출동 중인 구조대와 교신하며 최양의 상태를 전했다. 다행히 여자아이는 곧 의식을 되찾았다. 주민과 이 경사가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한 지 몇 분이 지난 후였다. 마침 구조대가 도착했고 아이는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증상을 ‘열경기’(열성경련)라고 진단했다. 열경기는 열이 오르면서 뇌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경련을 일으키는 증상이다. 열경기가 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의식을 잃고 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몇 분 이상 지속되면 뇌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
"살려줘요"...발빠른 대응으로 19개월 아기 구한 주민과 경찰관
입력 2015-08-20 08:53